스리위자야 항공 182편 스리위자야 2003년.
2003년. 인도네시아의 항공 붐이 일고 있었다. 737-200으로 구성된 저가 항공사가 새로 만들어졌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지역을 지배했던 스리위자야의 이름을 딴 스리위자야 항공이다. 스리위자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대승리, 혹은 영광의 정복이라는 뜻이다. 스리위자야는 서쪽으로는 인도와 이슬람, 우로는 당나라를 넘어 신라와도 교역했던 해상제국이었다. 신라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상감 유리구슬이 해상실크로드로 이어진 역사를 증명한다. 혜초를 비롯한 여러 신라 승려들도 천축으로 가는 길에 스리위자야의 바닷길을 지났다. 스리위자야의 무역항에는 아라비아, 인도, 중국의 향신료와 도자기가 거래되었다. 스리위자야 항공은 스리위자야 왕국처럼 동남아시아의 하늘을 정복할 수 있을까.
시작은 초라하다. 2003년 737-200 한 대로 자카르타와 팡칼 피낭을 왕복한다. 항공사는 빠르게 성장한다. 2010년에는 27대의 항공기를 운항한다. 2011년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항공사가 되었다. 커가는 덩치에 비해 내실은 엉망이다. 막대한 규모의 적자를 안고 있다. 국영 항공사인 가루다 항공과 제휴해 경영구조를 개선하려 했으나 쉽지 않다. 2019년 스리위자야 항공은 파산 직전에 몰린다. 유지보수 업체에 지급할 돈을 내놓지 않는다. 항공기를 운항할 수 없어 항공기 절반은 뜨지 못한다. 정비부터, 케이터링까지 부채투성이다.
설상가상. 2020년 COVID19 팬데믹의 시대가 되었다. 스리위자야 항공뿐 아니라, 체질이 튼튼한 항공사의 경영까지 위협받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리위자야 항공은 2021년까지 폐업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2021년 1월, COVID19의 기세가 꺾이고 하늘길이 다시 열린다. 스리위자야 항공의 낡은 기체들도 다시 운행하게 되었다.
등록번호 PK-CLC. 1994년 제작되어 2012년 스리위자야 항공이 인수한 기체다. 사업을 시작하며 도입한 낡은 737-200, 300 기체들은 유압액이 새는 사고가 잇다르며 수명을 다해갔다. 스리위자야 항공은 엠브라에르 E190을 20대 주문했지만 중단하고 737-500 중고 기체를 도입하기로 한다. 2011년 11월 콘티넨탈 항공에서 737-500 12대를 인수한다. PK-CLC도 구입 당시 기령이 18년 된 기체지만, 이 정도는 스리위자야 항공에서는 평균 수준이다.
팬데믹이 다가온 2020년 3월 23일부터 12월 20일까지는 아예 운항하지 못했다. 2021년, 1월 9일, 이제 먼지를 걷어내고 다시 운영한 지 20일이 되었다. 자카르타를 출발해 폰티아낙 공항으로 비행한다.
조종사 2명, 객실 승무원 4명, 이동하는 승무원 6명이 객실에 타고 있다. 승객은 50명, 이중 어린이가 7명, 유아가 세 명이다. 모두 56명이 탑승했다. 예약한 승객 한 명은 공항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탑승이 거부되었다. 운이 없어 일정을 망쳤다고 생각하며 귀가했을 것이다.
기장 아프완 Afwan 54세. 인도네시아 공군 출신이다. 참을성 있고 차분한 성품이다. “아무리 높이 날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천국에는 갈 수 없다.” SNS에 남긴 말이다. 이번 일정은 비행 몇 시간 전 급히 잡혔다. 공항에 도착한 기장은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나눈다. 큰 아이는 중학생, 막내는 유치원에 다닌다. 많은 조종사들이 COVID 19 기간 동안 직장은 불안정했지만, 가족과의 사이는 돈독해졌다. 총 비행시간 17,904시간. 737 기종 비행시간 9,023시간.
부기장 디에고 마마히트 34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조종사로 진로를 바꿨다. 스리위자야 항공에서 비행한 것도 7년이 되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나를 만듭니다.”'You are what you believe' 부기장이 SNS에 남긴 말이다. 2년 전 결혼해 어린 아들이 있다. 부기장도 비행 직전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원래는 파당으로 비행 계획이 잡혀 있었다. 총 비행시간 5,107시간. 737 기종 비행시간 4,957시간.
오후 1시 55분. 흐리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씨다.
출발할 절차는 ABASA 2D다. 247도로 1000피트로 상승한 다음 WINAR로 우선회 한다. AJUNA, NABIL로 이어진 뒤, RATIH에 이르면 고도 10000피트가 된다. LARAS, TOMBO, MULAN을 거쳐 ABASA로 출항한다. 이 출항 과정의 좌표는 FMC 비행관리컴퓨터에 등록되어 있다. 조종사가 LNAV 수평항법모드를 선택하면 그 길로 따라간다. 조종사는 전면에 있는 모드 제어 패널 MCP를 통해 비행 모드를 선택한다.
오후 2시 13분.
견인 허가를 받고 게이트에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조종은 기장이 맡고, 부기장은 감시 비행을 맡는다. 이륙 시에는 최초 고도는 1,780피트에 맞췄다.
“SJY182. 유도로 NC7, NP2로 25R 활주로로 이동하십시오.”
오후 2시 35분.
이륙 허가를 받았다. SJY182편은 25R 활주로에서 이륙한다. 기장은 추력 레버를 이륙 위치로 올린다. 기어를 올린 후 자동추력장치를 켠다. 이제 착륙할 때까지 추력 레버를 직접 만질 필요는 없다.
자동추력으로 설정하면 조종사가 속도와 고도를 바꿀 때마다 비행 컴퓨터가 필요한 추력을 맞춰준다. 바뀌는 추력에 따라 모터가 레버를 알아서 돌린다. 조종사가 레버를 손으로 쥐고 일정한 힘을 가하면 모터는 분리되고 인간에게 우선권을 넘긴다.
제트기의 추력 80% 이상은 엔진 전면의 팬 회전에서 나온다. 전면에 있는 저압축 회전수를 N1이라고 부른다. 자동차의 경우 RPM을 보며 엔진출력을 확인하듯, 제트기 조종사는 N1 백분율 수치를 보며 엔진출력을 확인한다.
오후 2시 36분
부기장 “고도 400피트. Four hundred”
기장 “수평 항법 모드로 전환. LNAV”
기어를 올린 뒤에는 수평항법모드로 입력된 좌표에 맞춰 상승할 것이다.
ATC “SJY182. 레이더에서 확인되었습니다. 표준계기출발 절차대로 29000피트까지 제한 없이 이륙하십시오.
속도는 SPD모드. 고도는 고도변환 LVL CHG 모드로 MCP에 입력한 고도로 상승 중이다. MCP에 고도를 입력하면 비행 컴퓨터가 필요한 엔진 출력을 정한다. 정해진 출력에 맞춰 추력레버가 움직인다.
이륙 2분 후. 5400피트를 지난다. 상승 속도를 줄이기 위해 V/S 수직 속도 모드로 변경한다. 목표 상승 속도는 분당 2,000ft. 멀리 뇌우가 보인다.
부기장“방향선택모드로 변경. Heading SEL”
기장은 수평항법 모드에서 방향선택 모드로 바꾼다. 구름을 피해 갈 생각이다. 고도변환 모드에서 수직속도 모드로 변경한다. 분당 3600피트로 상승하고 있다.
이륙 후 3분 19초 경과. 7,950피트를 지난다. 왼쪽 레버 각도는 47.5도. 왼쪽 엔진 N1 속도는 92.3%. 오른쪽 레버는 46.2도, 오른쪽 엔진 N1 속도는 91.8%. 조금 차이가 난다. 조종사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조종사들이 지금 걱정하는 것은 비구름이다.
부기장 “070방향으로 비행하시죠.”
기장 “확인.”
부기장은 070도 방향으로 우선회 할 것을 건의한다. 기장은 출항 관제에 075방향 선회 허가를 요청한다. 항공기는 이제 미리 입력한 좌표로 비행하는 수평항법 모드에서 선택한 방향으로 비행하는 방향 모드로 바꿔 비행한다. 기장은 075방향으로 노브를 돌린다. 항공기가 우선회 한다.
상승 속도가 줄도록 조종사가 입력하면, 오토파일럿은 엔진 출력을 줄인다. 최대 출력 위치에 가 있던 레버가 자동으로 뒤로 물러난다. 두 엔진의 레버가 똑같이 동작해야 하지만, 오른쪽 엔진의 추력 레버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륙 후 3분 40초 경과. 관제소에서 11000피트까지만 상승하라는 지시가 온다. 25L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다른 항공기와 간섭을 피하기 위한 조치다. 기체 고도는 8,800피트. 상승속도는 분당 2600피트. 왼쪽 레버 각도는 39도로 내려왔다. 왼쪽 엔진 N1 속도는 86.4%. 오른쪽 엔진 N1 속도는 여전히 91.8%다.
이륙 후 4분 16초 경과.
부기장 “고도 11,000피트 통과합니다”.
좌측 추력 레버는 22도로 내려왔다. 좌측 엔진 N1 속도는 67.5%. 우측 레버는 계속 고정되어 있다. 오른쪽 엔진의 N1 출력은 91.8%를 유지한다.
양쪽 엔진의 속도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한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런 비대칭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 비행 컴퓨터는 조종간을 기울여 롤 동작을 한다. 조종간이 오른쪽으로 19도 기운다. 조종사는 더 큰 각도로 기울일 수 있지만 비행 컴퓨터는 19도까지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추력 비대칭은 점점 커진다. 왼쪽 추력 레버는 17.6로 내려와 N1 스피드가 59.3%가 되었다.
자동추력장치는 언제부터 고장 나 있었을까. 정비 기록에 따르면 이 고장은 2013년 11월 처음 발견되었다. 이후 자동추력장치 오작동을 보고한 조종사는 무려 65명이다.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저절로 풀리는 등 오류가 끊이지 않았다. 그중 61건이 추력 비대칭 기록이다. 지난 7년 동안 수시로 추력 비대칭 작동이 있었고, 정비사들이 매번 정비를 해왔다.
정비사들은 전선 연결부위를 닦고 다시 조립하는 것으로 하드웨어적 정비가 끝난다. 다음으로는 비행 컴퓨터의 자체 점검 기능을 활용해 컴퓨터 오류를 점검한다. Built In Test Equipment 줄여서 BITE 검사다. BITE 검사에서 문제가 없으면 정비완료. 7년 동안 이렇게 정비해 왔다. 그리고 또다시 고장이 일어났다. 전선의 문제도 아니고, 비행 컴퓨터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니 컴퓨터 오류를 점검하면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 오류가 없다고 나오니 일단은 정비 완료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고장은 2020년 12월이다. 불과 열흘 전에 자동추력장치 컴퓨터가 교체되었다. 교체 후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니 최소한 컴퓨터 문제는 아니다.
정비사들이 7년 동안 못 찾아낸 이 고장의 원인은 뭘까. 추력 레버를 조종사가 직접 작동하면, 오토스로틀이 분리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2파운드 이상의 힘을 가하면 모터가 분리되어 사람 힘만으로 작동한다. 기계안 어딘가가 걸려 사람이 힘을 가하는 듯한 2파운드의 마찰이 생기면 모터에서 분리될 수 있다. 7년간 고질적으로 시달려온 고장의 정체다.
보잉은 이런 식으로 고장 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했다. 정비 매뉴얼에는 이런 상황에 맞춘 정비 절차가 있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정비 매뉴얼을 뒤져본 정비사는 반도 되지 않는다. 복잡한 매뉴얼을 읽는 대신, 즉각 해결할 수 있는 임시방편에 의존해 왔다. 연결부위를 깨끗이 닦은 후 다시 꼽고, BITE 검사를 하면 된다. 컴퓨터에는 문제가 없으니 언제나 통과. 정비사들은 이전에 정비했던 정비사가 날림 정비했다는 사실도 모른다.
스리위자야 항공은 15회 비행에서 3회 같은 오류가 나올 경우, 반복적 결함으로 분류하고 정밀 정비를 하도록 규정했다. 7년간 65건의 오류는 반복적 결함으로 분류되기에는 너무 적은 오류였다. 정말 65건 밖에 오류가 나오지 않았을까. 레버는 30초에서 7분 정도 멈춰 있다가 저절로 풀려서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이 항공기를 운항한 조종사들을 면담 조사한 결과 7명 중 5명은 고장이 일어났던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잦아 평범한 일상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2020년 3월 15일, 이륙 상승 중인 PK-CLC. 지금과 똑같이 자동추력장치가 걸렸다. 추력 비대칭이 되고 조종간이 오른쪽으로 19도 기운다.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다. 비행기가 왼쪽으로 기운다.
기장 “오른쪽으로 선회해.”
부기장이 우선회 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좌선회각이 41도에 이른다. 조종석에 선회각 경고가 울려 퍼진다. 기장은 오토파일럿과 자동추력장치를 해제하고 수동으로 조종한다. 기체는 우로 28도 기운 뒤 수평으로 돌아온다. 당시 기장은 추력이 비대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장도 부기장도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이 증언을 하는 사람은 당시의 부기장이다. 당시의 기장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 항공기로 비행하고 있다.
조종사는 우선회 하도록 명령을 내려놨기 때문에 기울어진 상황을 이상하다고 판단하지 못한다. 기체는 046도에 도달한 뒤 이번에는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추력이 더 높은 오른쪽 엔진은 기체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려 하고, 비행 컴퓨터는 비대칭을 제어하기 위해 조종간을 돌려 시계 방향으로 돌리려 한다. 컴퓨터의 복구 노력이 가상하지만, 엔진 추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고도가 높아지자 부기장은 고도계 수정치를 표준 값으로 바꾼다. 왼쪽 레버는 여전히 고착되어 있다. 기체는 초당 1도 정도로 왼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조종사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비정상 상황에서는 자동추력장치가 해제되고 경고가 나와야 한다. 이 경고를 위해 기체에는 CTSM이라는 안전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보잉에서 이런 상황을 대비해 추가로 도입한 시스템으로 2000년 이후로는 장착이 의무화되었다. CTSM이 기체 이상을 파악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스포일러가 2.5도 이상 기울어야 한다. 이 조건을 넘어선 상태지만, 기울기를 측정하는 센서가 너무 낮은 값을 컴퓨터에 보내고 있다. 센서가 언제부터 고장 나 있을까. 스리위자야 항공이 이 센서를 정비한 적은 없다. 이런 고장이 일어날 거라는 예상을 한 적도 없다.
고도 10570피트를 지나 계속 상승한다.
부기장 “고도계 수정치 표준으로 조정합니다.”
관제탑의 추가 상승 지시가 내려진다.
출항관제 “SJY132. 고도 13000피트까지 상승하십시오.”
부기장 “고도 13000피트까지 상승합니다.
왼쪽 추력 레버는 13도로 내려왔다. 왼쪽 N1 스피드는 49%, 오른쪽은 여전히 91.8%.
기장 “고도 13000피트.”
부기장 “고도 13000피트.”
기체는 왼쪽으로 37도로 기울고 있다. 왼쪽 추력 레버는 9.3도로 내려와 N1 스피드가 35.1%.
선회각 경고
이륙후 4분 42초가 경과했다. 마침내 선회각 경고음이 울린다.
EGPWS “뱅크 앵글.”
기장이 놀란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기장 “응?”
부기장이 엉겁결에 사과한다.
부기장 “어? 죄송합니다.”
부기장은 자신의 조작 오류라고 생각한 것일까.
선회각 경고가 다시 울린다.
부기장 “선회각 경고입니다.”
왼쪽으로 49도로 기울었다. 고도는 10700피트. 구름 위로 올라와 있다. 주변이 온통 구름이다. 비교할 시각적 참조물이 없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얼마나 기울었는지 감각이 없다.
기장은 오토파일럿을 해제한 뒤 조종간을 직접 잡는다. 10개월 전에 기체 자세를 바로 잡았던 것처럼, 금방 수정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기장은 기울고 있는 왼쪽으로 기울인다. 기장은 실수를 깨닫고 즉각 반대쪽으로 기울인다. 기장이 조종간을 왼쪽으로 기울인 것은 불과 4초다. 그러나 4초도 너무 긴 시간이다. 기체는 순식간에 왼쪽으로 90도 꺾인다.
줄 끊어진 연처럼 순식간에 양력을 잃고 추락한다. 360도로 뒤집히는 기체 안에서 부기장이 외친다.
부기장 “기장님.”
부기장 “기장님”
비정상 자세를 회복하는 훈련을 조종사들은 받는다. UPRT Upset Prevention & Recovery Training. 비정상 자세로 인한 조종능력상실 항공사고를 예방 및 회복하기 위한 훈련이다. 선회각이 60도 이상일 때 수평으로 유지하는 것은 기초 단계에서 배운다. 수평 자세가 되기 전에 기수를 들면 실속에 빠질 수 있다.
부기장 “비정상 자세.”
부기장 “비정상 자세.”
기장에게 아직 남은 기회가 있을까. 기장은 기수를 당긴다. 그러나 기체는 뒤집힌 상태다. 기수를 당기면 지면을 향해 급강하할 뿐이다. 기체는 나선을 그리며 추락한다. 과속 경고가 조종석을 채운다.
부기장 “기장님”
부기장 “기장님”
기체는 거의 수직으로 최대 하강속도 분당 -45,000피트로 내리 꽂힌다.
기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끝내 날개를 수평으로 맞춘다. 기수도 이제 거의 수평으로 당겼다. 그 상태로 바다에 부딪힌다. 바다에 부딪혔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속 1000킬로에 가까웠던 속도로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났다. 모든 것이 갈기갈기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찢겼다. 경고음이 울린 지 25초가 지난 후였다.
어부들은 굉음과 함께 뿌려지는 파편을 보았다. 1년 2개월 전 라이온 에어 610편의 추락지점에서 64킬로 떨어진 곳이다. 어선들이 추락 현장에 다가가 생존자를 찾는다. 그러나 흩뿌려진 잔해 사이로 멀쩡하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고 현장을 인도네시아 교통안전위원회가 수색한다. 잦은 항공사고로 사고 조사만큼은 체계가 잡혀간다. 해저 수색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한다. 바닷속에서 블랙박스를 찾았지만 CVR을 보호한 케이지가 충격에 파손되어 메모리 모듈이 뜯겨 나가 있다. 신호발생기도 없이 산산조각 난 메모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때까지도 기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조사팀은 해저 수색을 이어갔다. 사고 발생 3개월 후, 기적적으로 잔해 주변에서 메모리 모듈을 발견했다. 메모리는 복구에 성공했다. 자료를 다운로드한 사고조사팀은 크게 실망한다. 조종석의 마이크가 고장 나 녹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기장석의 일부 녹음만 남았다. 기장의 목소리는 지상에서의 교신 일부만이 남았다. 기장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는 없을까. 답은 다른 곳에서 나온다.
조사관들은 스리위자야 항공의 조종사 훈련 과정을 참관했다. 기체가 비정상자세로 기울어지자 조종사들은 기수부터 들었다. 당연히 실속에 빠진다. 무슨 상황인지 판단을 못하다가 교관이 지적한 후에야 문제를 파악한다. 교관도 훈련생도 UPRT 훈련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프완 기장은 부실한 훈련과정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단순한 고장이었다. 자동추력자치를 해제하고 추력 레버를 잡기만 하면 바로 해결되는 일이었다. 부실하게 정비받은, 부실한 기체를, 부실하게 훈련받은 조종사가 부실하게 조종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항공산업은 앞으로도 급성장할 것이다. 성장하는 키만큼 그림자도 길어진다. 멈춰서 안전을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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