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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May 05. 2022

어느 가족(2018)

실체없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서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브로커'가 개봉을 앞두고 그의 영화들을 찬찬히, 하나씩 감상 중이다.

아직 그의 모든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고레에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의 영화는 늘 '가족'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때그때 다른 듯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특히나 '어느 가족'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저격하는 영화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치는 아빠(아저씨), 주워온 아이,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할머니, 그 외에 다른 가족 구성원 또한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이 '가족'은 겉으로 보았을 땐 여느 가족과 다를 것 없이 함께 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지만, 이들은 돈이라는 필요에 의해 서로 얽혀있는 관계이다.

하지만 주워온 아이 유리, 혹은 쥬리 혹은 린 만큼은 그렇지 않다. 가족들은 어떤 필요에 의해 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닌 연민으로 시작된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그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떠한 감정으로 인해

아이를 가족으로 맞고 함께 살아나간다.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장남 쇼타가 결국 가족을 해체 시키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경찰에 잡혀 그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유리는 가정폭력을 일삼던 자신의 원래 가족에게 돌아가고 노부요는 유괴, 살인 죄 등으로 구속된다.

이들이 이렇게 해체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피가 섞이지 않았으며 세상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순리와 과정을 따르지 않고 만들어진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한대로 가족을 떠난 쇼타는 행복할까.

마지막에 아버지이자 아저씨인 오사무를 만나고 다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은 쇼타는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아빠'라는 단어를 뱉어낸다.


참 서글펐다. 이들에게 돈이 있었다면, 혹은 이들이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무언가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질문, 사회의 기준에 맞는 세상의 가족들은 이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고레에다는 인간의 가장 긴밀하고 가까운 인간관계인 가족을 소재로 참 많은 영화들을 써내려왔다.

영화마다 가족의 형태와 사연은 다 다르지만 현실에서도 수 많은 가족들이 정말로 다양한 형태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가장 원론적인 질문. 가족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봤을 때 누군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혈연으로 묶인 관계라고도 할 수 있고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사랑과 이해로 서로를 보듬어주는 집단, 관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란 참 어렵다.

때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와 사는 것이 괴로울 때도 있고 내 생각처럼 육아가 되지 않아 절망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혈연관계라면 자신이 가족 구성원을 선택하는 건 불가능하다.(부부관계를 제외하고)

그럼 우리는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형성된 이 타인들을 좋든 싫든 감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겪게 되는 불행을 덮을만큼의 크기의 행복을 스스로 찾으며 모두가 자신을 조금씩 희생할 때 비로소 아주 조금은, 완성된 형태의 가족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족이니까'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말은 누군가를 정말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는 말이다.

결국 모두의 작은 희생이 없이는 계속해서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것은 사회가 바라보는 가족의 기준에서 벗어나 개인은 자신이 선택받은 불운을 떠안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슬프게도 꽤나 많은 수의 가족이 불완전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없는 희망을 만들어서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혼모 가정, 가정폭력, 생활고 등등...)

가장 가까운 곳에 불행을 주렁주렁 달고 살기엔 인간은 참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작은 희망을 만들어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인간 마음 속 가장 들춰보고 싶지 않은 곳을 보게 한다.

늘 따뜻한 영상미에 나른해보이지만 이만한 스릴러가 없을 정도로 무섭게 인간의 삶을 관철한다.

그렇기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꼭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남의 고통을 보며 동질감도, 희망도 얻을 수 있으니까.


또한, 모든 인간이 어린 아이였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 또한 모든 어른들이 짊어져야만 하는 숙제라는 생각을 한다. 나약한 존재를 품어주지 않는 사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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