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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May 07. 2023

120과 48. 더 고여서 썩기 전에

직장인과 백수의 중간에서

이제 갓 2년차 직장생활을 한 고인물 중고 신입은 작년초 쯤 만든 브런치 계정에 몇 번 글을 끄적이고

그대로 먼지가 쌓이게 방치해두었다.


마지막 글을 쓴 날로부터 수개월이 흐르는 사이에 수많은 심리적인 변화가 있었고,

직장인으로써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많은 시간 살을 부대끼는 것은 바로 키보드였다.

집에 돌아오면 노트북을 켜 나만의 작은 세상을 통해 이런저런 것들을 하곤 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키보드에 살이 닿는 감촉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이로부터 시작된 나만의 작은 재앙.

나는 무엇을 해도 "재미있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어딘가에 몰두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정도로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현재진행형인 나의 무기력증은 보통의 사회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그런 종류의 무기력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늘 빼곡히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해나가던 나였고 스스로 취미부자라고 자부할 수 있었을만큼

좋아하는 것도, 관심사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한때 나의 취미였던 것들은 내 브런치 계정마냥 하얗게 먼지가 쌓여서

종종 떠오르는 날에는 먼지가 손에 묻을까 꺼내보지도 않게 된 지가 오래되었다.




하루 24시간 곱하기 5일. 그렇게 120시간이라는 평일은 나에게 주말이라는 보상을 받기위해 달려나가는 시간이었고 48시간의 주말은 다음주를 걱정하며 보내는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일주일을 버텨내도 온전히 쉴 수 있는 그런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오후, 아직은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어느 5월

무기력증에 빠진 직장인은 생각한다.

재미있지 않다면 억지로라도 재미있어보자. 다시 찾아보자!


수많은 꿈과 계획을 갖고 있던 에너지 넘치는 자신을 다시 찾아보자고. 그렇게 다짐하고 자신이 바라왔던 것들을, 다시 하나하나 해나가보자고 다짐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지금은 안 쓴지 오래되었지만 십대때는 몇년간 꾸준히 쓴 일기장을 쌓으면 무릎높이에 닿을 정도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 이후에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었다.

브런치도 글쓰기라는 취미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하게된 활동이었으나 꾸준히 글을 쓰진 못했다.


하지만 "나 글쓰기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지겨워졌어"라고 양심선언하고 다시 무뎌진 감정들을 살려내기 위해 꾸준히 타자를 칠 것이라는 다짐을 해본다. 그래야 잔뜩 고여서 썩어가던 감정들과 무기력을 털어내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넣을 수 있을 것 같기에.


더 고여서 썩기 전에 오랫동안 묵어버린 내 부정적인 감정들은 덜어내고 시원하고 새로운, 나의 죽은 세포들을 살려내줄 것들로 가득 채워나가야겠다.


-2023.05.07 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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