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 왜 뛴 거니

10분 미리 출발, 가장 안전한 지름길

by 정성희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들어서니 사거리 횡단보도가 보였다. 그 순간 길가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횡단보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저거 건너야 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횡단보도 대기선에 닿았을 땐 이미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들이 도로 위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녹색 신호등은 경고하듯 깜빡였다. 10, 9, 8… 빠르게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건너? 말어?' 찰나적인 갈등을 했다. 전철역 사거리의 횡단보도는 5차선이었고, 7초 만에 내가 건너가기엔 해보나 마나 무리였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고민하고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발이 제멋대로 움직여버린다. "이봐요 머리, 그건 한가로울 때 얘기지, 지금은 시간이 촉박하잖아. 선택지 없어, 무조건 뛰어야 해. 빨리빨리!" 나는 나도 모르게 발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속도가 안 난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라도 찬 건지 천근만근이다. 노트북을 둘러맨 백팩은 어깨를 짓누르고 보조가방은 무거운 추가 움직이듯 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나이 든 여자가 그렇게 뛰는 모습이 얼마나 가관이었을까. 자동차들은 슬슬 움직일 태세로 위협을 가해 왔다. 죽을힘을 다해 뛰었으나 서너 걸음 남겨두고 빨간 불로 바뀌었다. 마저 다 건너고 나니 주저앉을 듯이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쨌든 시간을 확보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지하철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계단을 한 개 내리 딛는데 '찌릿' 오른쪽 무릎에 번개 치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좀 전에 횡단보도를 뛰었던 충격이 컸던가 보다. 급작스러운 복병에 아뜩했다. 70여 개나 늘어진 계단이 까마득해 보였다.


다른 출구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돌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럴 여유도 없고 귀찮았다. 뒤에서 갑자기 타다닥 발소리가 들리더니 몇 사람이 날다람쥐처럼 계단을 내려간다. 전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아, 나도 얼른 가야 하는데.' 한 손으로 난간을 잡으며 최대한 서둘렀다. 숨이 턱에 차 플랫폼에 도착하니 전광판에 '도착'이라는 안내 문구가 떠있었다. 카드를 꺼내 개찰구에 대려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동시에 전철이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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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몇 개를 더 내려가 승강장에 도착했다. 허탈한 마음에 굳게 닫힌 스크린도어만 노려봤다.


천장에 매달린 전광판에는 다음 열차 도착 ‘11분’이라는 글자가 약 올리듯 선명했다.



“대체 나, 왜 뛴 거지?”


신호에 목숨 걸고 관절 통증 감수하며 계단을 내달린 결과가 어이없었다.


1분 1초가 아쉬운 판에 ‘11분의 기다림’이라니.


어차피 이럴 거면 한들한들 우아하게나 걸어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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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리다 문득, 나이 오십 넘으면 횡단보도에서 절대 뛰지 말라던 어느 유튜버의 경고가 떠올랐다. 녹색 잔여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땐 그냥 기다렸다 다음 신호에 건너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늘 오르내리는 소재 거리였다. 누구누구가 뛰어가다 넘어져서 팔목이 부러졌다더라, 계단을 급히 내려가다 미끄러져 엉치뼈가 금 갔다더라는 둥. 그런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스레를 떨며 혀를 찼었다.


“아구, 저런, 바보 아냐?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야.”


그 바보 오늘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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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작년 언젠가, 그 경고가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직접 목격한 바도 있다. 명일역 앞 횡단보도였다.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뛰어가던 중년 남자가 보도블록 턱에 발이 걸려 그대로 고꾸라졌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일으켜 주었지만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치아도 몇 개 부러진 것 같았다. 어디를 많이 다쳤는지 일어나질 못하고 고통스럽게 앉아있었다. 누군가의 신고로 곧 119차가 도착했다. 구급 대원들이 그 남자를 들것에 옮기는 모습을 보며,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내심 기도하며 놀란 가슴 쓸어내렸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가던 길을 서둘렀던 생각이 난다. 남의 불행을 통해 안전의 중요성을 각인했음에도 막상 급한 상황에선 망각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안전 수칙이란 왜 이토록 지켜지기 어려운 것일까. ‘나는 괜찮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 ‘이번 한 번쯤이야’ 하는 안일함 때문 아닐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강요해 온 ‘빨리빨리’라는 속도의 관성이 내 몸에 깊이 새겨진 탓인지도 모른다. 1분 1초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 뒤처지면 끝이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내 마음은 은연중 전속력으로 질주하려는 관성에 머물러 있었지만, 60대의 몸은 더 이상 그 폭주를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러니 약속시간에 빠듯하게 맞추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대신 제발 10분 먼저 도착하는 지혜로운 습관을 들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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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지만, 통증과 허탈함 속에서도 내게 값비싼 성찰의 기회를 준 건 아닐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강제로 부여된 ‘쉼표’ 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필사적이었나. 결국 놓쳐버릴 열차를 타기 위해, 무릎의 통증과 맞바꾼 몇 초의 시간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이번 계기로 다시금 깨닫는다. 뛰어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며,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나를 지키는 최고의 안전 수칙이라는 것을.



오늘 아침 아픈 무릎과 떠나간 열차, 그리고 길 위에 스러졌던 누군가의 시간이 내게 묵직한 울림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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