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스토어, 효자 상품

자유 글 40 꼭지 프로젝트 4

by 정성희




버티는 것도 실력이다. 이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5년이 걸렸다.


2020년, 나는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래서 배우러 다녔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성동구에 있는 오너클랜 사업장이었다. 직접 가서 배우면 뭔가 달라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도통 몰랐다. 상품 하나 등록하는 일이 뼈를 갈아 넣는 노동처럼 느껴졌다.


그다음은 구로디지털에 있는 '전 국민 사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사용비도 비싸게 지불했다. 그래도 잘 따라가지 못했다. 성과도 없이 돈과 시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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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어느 교수가 차린 밴더사였다. 처음엔 온채널 교육하다 밴더사로 전환했다. 교육비만 이백여만 원을 투자했다. 그 사이트는 연회비에 차등을 두고 마진율을 50% 안팎으로 좌우했다. 마진율이 좋은 대신 수시로 변덕을 부렸다. 기껏 종일 매달려 상품을 올려놓으면 며칠도 안 되어 교체하라거나 아예 삭제하라고 했다. 그걸 1년 넘게 되풀이하다 결국 짜증이 나서 관뒀다. 건강 상품이 많았고 산삼도 취급했다. 산삼 한 뿌리가 수백만 원씩 하는 것도 있었다. 그러니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칠 만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만 돈을 버는 구조였다.


그렇게 배우는 데 쓴 돈과 시간이 엄청났다. 돌아보면 강의비, 프로그램 사용료, 연회비, 교육비까지 어림잡아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허탈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 몰라서 쓴 돈은 수업료다. 몰랐으니까 배우러 다닌 것이고, 배우러 다녔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품은 계속 올렸다. 처음에는 상품 하나 올리는 데도 하루가 걸렸다. 상품명을 쓰고, 이미지를 정리하고, 상세페이지를 다듬고, 카테고리를 맞추는 일까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올렸다. 어느 순간 보니 상품이 800개가 넘어 있었다. 그 숫자를 보고 나도 조금 놀랐다. 이 정도면 언젠가는 주문이 들어오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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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사는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밴더사의 문제로 등록했던 상품을 모두 내려야 했다. 한 번에 800개였다. 그 화면을 바라보는데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품 등록이 고된 일이라 알바를 썼다. 사촌 조카라 믿고 맡겼다. 나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잘 하고 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두고 난 뒤 상품 페이지를 살펴보니 대부분이 제대로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상품명도 엉성했고, 옵션도 맞지 않았고, 설명도 제대로 올라가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날림 등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상품 노출도 거의 없었고 주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한참 뒤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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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하다 지치고, 거래처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아 지치고, 나는 어느 순간 스토어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도 조카가 엉망으로 해놓은 상품 페이지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하나씩 다시 손을 댔다. 상품명을 고치고, 옵션을 맞추고, 설명을 다듬었다. 엄마는 젊었을 때 한복을 만들어 품삯을 받았다. 가끔 헌 옷을 가져와 리폼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옷은 새로 만들고 말지, 뜯어서 고칠 때가 품이 몇 배나 든다’고 엄마는 말하곤 했다. 상품 수정하는 내 심정이 딱 그랬다. 다 정리하고 나서 몇 개 상품에 네이버 광고를 돌렸다. 클릭 단가는 50원 정도로 최소한만 썼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광고비를 계속 쓸 여건이 되지 않아 얼마 뒤 중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광고를 끊은 뒤에도 상품 하나는 계속 팔렸다. 하루에 한두 개,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주문이 들어왔다. 마진은 하나에 만 원 정도였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상품이 참 고마웠다. 어쩌면 그 상품 덕분에 가게를 완전히 접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3년 동안 그 상품은 조용히 팔렸다. 마치 가게를 묵묵히 지켜 주는 사람 같았다.



-하략 下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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