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지난다, 봄은 온다, 우울도 그렇다

자유 글 40 꼭지 프로젝트 5

by 정성희


봄볕을 보는 것만으로 기운이 났다.


움츠러들기만 했던 겨울이 쏟아지는 햇살에 힘을 잃고 슬금슬금 물러났다. 창가에 앉아 그 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으니 문득 떠올랐다. 내가 꽤 오랫동안 우울 속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SE-d0268114-6f36-4e3c-8b4d-1cafd4308789.jpg?type=w1 겨울은 지난다, 봄은 온다, 우울도 그렇다



우울은 엄동설한과 닮았다. 춥다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떨기만 하면 겨울이 가기도 전에 사람이 먼저 지친다. 바람을 막고 온기를 지키며 버텨야 한다. 그렇게 에너지를 모아야 봄을 맞을 힘도 생긴다. 우울도 비슷하다. 우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도망치지 않고 곁에 두며 다독일 때 조금씩 빛이 스며든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겨울이 없듯이, 아무리 깊은 우울도 언젠가는 물러난다.



내게 우울이 찾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018년, 엄마와의 이별이 시작이었다. 준비 없는 사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었다.


엄마의 마지막 생신을 챙겨드리지 못했다. 그날 엄마가 나를 기다리셨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일한다는 이유로 가지 못했다. 다음에 가면 된다고, 조금만 지나면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미뤘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그 사이 엄마는 뇌졸중이 재발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제야 달려갔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렇게 엄마를 떠나보냈다. 마지막 생신 한 번을 함께하지 못한 일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아마 오래도록 그럴 것이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엄마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온 그 발로 베이비시터 일을 계속했다. 아이를 돌보는 동안에도 나는 얼이 빠진 사람이었다. 몸은 그곳에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그 뒤로 몇 해 동안 삶은 매섭게 나를 흔들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돈보다 더 아팠던 것은 관계였다. 사람을 믿었던 마음이 허무하게 무너질 때, 마음 한쪽이 서서히 식어갔다.



상처들이 겹겹이 쌓이자 잠이 사라졌다. 눈을 감아도 뇌는 각성 상태였고 심장은 방망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지인의 권유로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 앞에 앉았지만 나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중년의 남자 의사는 내 얼굴보다 컴퓨터 화면을 더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며 자판을 두드렸다. 환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약을 처방할지 이미 정해 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묻는 말에 최소한의 짧은 대답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 분 약을 받아 나왔다. 반년 정도 약을 복용했던 것 같다. 밤에 잠드는 일은 조금 나아졌지만 낮에도 몸이 몽롱했다. 결국 약을 끊었다. 약이 아니라 스스로 버텨보고 싶었다.



마음이 아플 때 병원을 찾는 일은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찾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티븐 호킹은 말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있다." 전신이 마비된 채 우주의 비밀을 풀어낸 사람의 말이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붙들었다.



사는 것이 아무 재미도 없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웃으며 이야기했고, SNS에는 웃는 사진도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문제는 혼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줌으로 독서 모임을 하던 날이었다. 토론 시간에 내 차례가 되어 책 이야기를 꺼냈다. 몇 문장을 말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울컥 목이 막혔다. 어느 지점에선지 모르겠는데 감정이 건드려진 모양이었다.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급히 마무리하고 순서를 넘겼다.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카메라 밖으로 몸을 피한 채 한참을 울었다. 화면 속에는 일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그 장면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모임들을 하나씩 그만두었다. 독서 모임도, 동창 모임도, 내가 만들었던 고향 친목 모임도.



몇 해의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글쓰기도, 책 쓰기도, 코칭 활동도 모두 손에서 놓았다. 우울은 무기력을 데려왔고, 무기력은 삶의 의미를 조금씩 빼앗아 갔다. 육십 대 중반을 넘긴 나의 내면아이는 끈을 놓친 미아처럼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었다.



-하략 下略 -






작가의 이전글스마트 스토어, 효자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