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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민 Aug 04. 2022

시간이 뭉텅 잘려 아쉬운 '운탄고도'

그냥 사소한 기록 _  운탄고도(運炭高道) 1330

운탄고도(運炭高道) 1330.


운탄고도는 ‘석탄을 나르던 높은 길’이라는 뜻이고 1330은 가장 높은 곳인 만항재의 높이로, 폐광지역인 영월, 정선, 태백, 삼척 4개 시군을 연결, 1길부터 9길까지 총 길이 173.2km로 조성되어 9월 개통되며, 그전에 tvN에서 ‘운탄고도 마을호텔’이라는 프로그램이 8월 15일부터 방영될 예정으로 운탄고도를 알리는데 한몫을 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가는 운탄고도에는 아쉬움이 있다. 여기엔 탄부와 석탄을 나르던 시절의 운탄길 이전에 그 길을 만들어 걷던 사람들의 힘들고 슬픈 시간들이 뭉텅이로 빠져 있는 것이다.    

 

운탄고도(運炭高道)라는 이름은 문화일보 박경일 기자가 붙이면서 시작됐다. (석탄 싣고… 배추 싣고… 삶이 오르내리는 길, 문화일보 2011. 9. 7.)     

강원 정선의 화절령 능선에서 시작해서 백운산, 두위봉, 질운산의 어깨를 짚고 새비재(조비치·鳥飛峙)로 넘어가는 길...  정선과 영월의 경계를 따라 무려 25km가 넘게 이어진 길...”      


이 길은 지금 운탄고도 4코스길에 해당하는데 그 시작 화절령과 끝 새비재는 모두 정선땅이다. 그런데 운탄길 이전에도 그 길을 걷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의 영월 산솔면 직동리의 화전민들.     

이 길은 한때 강원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 한밭골 마을 화전민들이 저 먹기에도 빠듯한 한 해 농사로 거둔 콩이며 옥수수 따위를 자루에 담아 지고 정선의 함백역으로 넘어가던 길이었다. 이렇게 지고간 몇 줌의 곡식을 쌀이며 생선 몇 마리와 바꿔서 온 길을 되짚어 산골마을 집으로 돌아갔다...”     


정선 화절령이란 이름을 영월 직동리 청년들이 붙였다고 한다, 꽃꺾이재라는 예쁜 이름으로.     

화절령이란 고갯마루의 이름은 이곳 직동리 청년들이 붙여준 것이다. 땔나무를 하는 총각들이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하는 이 고개에 올라 누가 많은 종류의 꽃을 꺾는지 내기를 해서 이긴 사람에게 나무 한 단씩을 보태주곤 했단다. 그래서 ’꽃꺾이재’로 불렀다가 ‘화절(花折)‘이란 한자이름으로 고쳐 불리게 됐다는 것...”     


예전이야 영월땅인지 정선땅인지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살고 그 길을 걷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석탄캐던 시절의 이전이라고, 지금은 운탄고도라고 불린다고 잊혀지면 절대 안될 것이다.     

"... 직동2리 화절치마을의 흙집을 지키고 있던 심재남(64)씨가 추억하는 과거는 죄다 가난과 배고픔의 기억이었다. 심씨는 젊은 시절, 가을이면 제 먹을 것도 모자란 옥수수를 자루에 담아 운탄길을 반나절을 걸어 함백으로 팔러나가곤 했다. 심씨는 “한번은 옥수수를 판 돈으로 비료 한포를 지고 긴 산길을 걸어 넘어오는데 날은 저물고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서러움에 겨워서 산중에서 목놓아 운 적도 있다”고 했다... "

    

운탄고도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길을 걸을 사람들이 직동리가 동학교도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곳이고 일제 때 의병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며, 또 6·25 전 해에 빨치산에 청년들이 몰살 당한 곳이었는지 관심없을 거라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박 기자가 모르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그 힘들었던 삶들을 기록하여 남기는데, 최소한 영월이나 정선사람들이 행정구역으로 영월땅이니 정선땅이니 나누지 말고 힘을 합쳐서 그 삶의 시간들이 반쪽기록이 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꽃꺾이재 너머 정선의 산골짜기나 조비치에도 사람들이 살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의 삶은 직동리 화전민과 그리 달랐겠는가.


산중에서 배고파 서럽게 우셨던 심재남 어르신의 안부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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