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아주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프롤로그

by 헤아림


사람들은 나를 보고 “ 참 어른스럽다”, “침착하다”라고 말한다.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 힘든 내색 없이 맡은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이 어른스러움이 성숙함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우는 법보다 참는 법을 먼저 배웠다. 내 감정을 드러내어 위로받기보다는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는 것이 더 익숙했다. “괜찮아”라는 말은 나에게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지키는 방패이자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긋는 안전한 선이었다.


그렇게 몸만 자란 어른이 되었다. 겉으로는 사회생활을 잘 해내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속은 여전히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남들의 기분에는 그토록 예민하게 더듬이를 세우면서, 정작 내 마음이 보내는 비명소리는 철저히 외면했다.


"다 지난 일이잖아. 이제 와서 어쩌겠어"

과거가 발목을 잡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쳤다. 약해빠진 소리 하지 말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나를 몰아세웠다. 내가 나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였다. 이 글은 그 긴 외면의 시간에 대한 참회록이자, 뒤늦게 나에게 건네는 화해의 편지다.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마법 같은 치유법은 없다. 찢어진 페이지를 풀로 붙인다고 해서 새 종이가 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찢어진 자국을 흉하게 여기지 않고, “그때 참 많이 아팠지”라고 쓰다듬어 줄 수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안아주기까지 정말 너무 오래 걸렸다.

지금도 어른인 척 가면을 쓰고 하루를 버티는 당신에게,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있지만 밤이면 이유 모를 불안에 시달리는 당신에게, 이 글이 작은 안부 인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아팠습니다. 이제는 그 아름을 안아주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제 글이 당신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매주 금요일, 따뜻한 편지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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