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도와줘"라는 말이 가장 어려워서

by 헤아림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세 글자가 있다. 입 밖으로 꺼내려면 혀가 마비된 듯 굳어버리고, 목구멍에 가시가 돋친 듯 따끔거리는 말, 바로 "도와줘"라는 말이다.


회사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업무가 쏟아져도 나는 묵묵히 야근을 자처했다. 몸살감기로 펄펄 끓는 열에 시달려도, 친구나 가족에게 "약 좀 사다 줄 수 있어?"라고 묻는 대신 혼자 끙끙 앓았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참 독립심이 강하다, 혼자서도 야무지게 잘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은 건강한 독립심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의 고립된 생존 본능일 뿐이다.


나는 왜 타인의 손길을 그토록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고, 지쳐 보였다. 내가 무언가 서툴러서 도움을 요청하려 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깊은 한숨 소리나 짜증 섞인 반응이었다.


"너는 다 큰 애가 왜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니? 아우, 귀찮아, 저리 좀 가"


도움을 바라는 나의 눈빛은 부모님에게 '귀찮은 일거리'로 해석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짐짝처럼 느껴졌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아니 적어도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해결하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나에게 도움 요청은 곧 무능력함의 증명이자,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버렸다. 거절당할 때의 그 비참함과 수치심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나는 차라리 혼자 힘든 쪽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하는 게 편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편한 것이 아니라 외로운 것이었다.


누군가 호의로 "도와줄까?라고 물어오면, 나는 반사적으로 "아니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라고 철벽을 친다. 상대방의 배려를 거절하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은 헛헛하다. 사실은 누군가 내 짐을 조금만 나눠 들어주기를,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와줘" 이 짧은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 삭여야 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 모든 걸 해내는 슈퍼맨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며 살아가는 것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다음번에 정말 힘든 순간이 오면, 용기 내어 말해보고 싶다. 나 지금 좀 힘들다고. 잠시만 내 손 좀 잡아줄 수 있냐고.


그 말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웅크리고 있는 내 안의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도와달라고 말해도 돼. 너는 짐이 아니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