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세 글자가 있다. 입 밖으로 꺼내려면 혀가 마비된 듯 굳어버리고, 목구멍에 가시가 돋친 듯 따끔거리는 말, 바로 "도와줘"라는 말이다.
회사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업무가 쏟아져도 나는 묵묵히 야근을 자처했다. 몸살감기로 펄펄 끓는 열에 시달려도, 친구나 가족에게 "약 좀 사다 줄 수 있어?"라고 묻는 대신 혼자 끙끙 앓았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참 독립심이 강하다, 혼자서도 야무지게 잘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은 건강한 독립심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의 고립된 생존 본능일 뿐이다.
나는 왜 타인의 손길을 그토록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린 시절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고, 지쳐 보였다. 내가 무언가 서툴러서 도움을 요청하려 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깊은 한숨 소리나 짜증 섞인 반응이었다.
도움을 바라는 나의 눈빛은 부모님에게 '귀찮은 일거리'로 해석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짐짝처럼 느껴졌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아니 적어도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해결하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나에게 도움 요청은 곧 무능력함의 증명이자,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버렸다. 거절당할 때의 그 비참함과 수치심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 나는 차라리 혼자 힘든 쪽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하는 게 편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편한 것이 아니라 외로운 것이었다.
누군가 호의로 "도와줄까?라고 물어오면, 나는 반사적으로 "아니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라고 철벽을 친다. 상대방의 배려를 거절하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은 헛헛하다. 사실은 누군가 내 짐을 조금만 나눠 들어주기를,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 모든 걸 해내는 슈퍼맨이 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며 살아가는 것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다음번에 정말 힘든 순간이 오면, 용기 내어 말해보고 싶다. 나 지금 좀 힘들다고. 잠시만 내 손 좀 잡아줄 수 있냐고.
그 말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웅크리고 있는 내 안의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도와달라고 말해도 돼. 너는 짐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