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다 지난일"이라는 말의 무게

by 헤아림


오랜 고민 끝에 누군가에게 마음속 깊은 상처를 꺼내 보였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종종 허무하리만치 명쾌하다.


"에이 다 지난 일이잖아. 이제 그만 잊어. 부모님도 그때는 어쩔 수 없으셨겠지, 너도 이제 어른이잖아"


그들은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이었겠지만, 나에게 그 말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그 말은 마치 내 아픔에 유효기간이라도 정해져 있다는 듯 '아직도 아파하는 건 네가 유별난 탓'이라고 꾸짖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 지난 일'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지난 일이라고 하는가.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달력의 숫자가 바뀌고 계절이 변한다고 해서, 마음에 새겨진 멍자국까지 저절로 흐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해자는 쉽게 잊는다. 그들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배설이었거나, 훈육이라는 이름의 가벼운 해프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하는 아이에게 그 시간은 세상이 무너지는 공포였고, 존재가 부정당하는 수치심이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갇혀 있다. 내 몸은 오십이 넘어 어른이 되었지만, 내 안의 아이는 여전히 그날의 방문 뒤에 숨어 떨고 있다. 밥을 먹다가도 젓가락을 내려놓게 만들고, 잘 웃다가도 갑자기 명치를 꽉 막히게 만드는 그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통증들은, 그 일이 결코 '지난 일'이 아님을 증명한다.


상처는 덮어둔다고 낫는 게 아니라, 곪을 뿐이다. 제대로 된 사과도, 충분한 애도도 없이 다 지난 일이라며 덮어버리는 행위는 곪아 터진 상처 위에 더러운 붕대를 감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안 보일지 몰라도, 속에서는 살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인정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아직 그 일이 지나가지 않았음을. 시간이 약이 아니라, 직면과 인정만이 약이 될 수 있음을.


누군가 나에게 또다시 '다 지난 일 가지고 왜 그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시간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고.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잊으라는 충고가 아니라, 그때 많이 아팠겠구나라는 인정과 공감이라고.


그 한마디의 인정을 듣기 위해. 나는 이렇게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