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나는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 피가 철철 나도, 친구에게 억울한 오해를 받아도, 갖고 싶은 장난감 앞에서 매몰차게 거절당해도, 나는 그저 입술을 안으로 말아 꾹 깨물 뿐이었다.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울음 덩어리를 억지로 삼키느라 턱근육이 얼얼해지는 것을 견디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아주 일찍 깨달았다. 우리 집에서 '나의 울음'은 위로받아야 할 신호가 아니라, 빨리 제거되어야 할 소음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몇 살 때인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집안 공기가 유난히 살얼음판 같던 날이었다. 놀다가 실수로 뭔가 깨뜨린 것 같았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이 정적을 깼다. 놀란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부모님의 날 선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그 순간, 터져 나오던 울음이 헙, 하고 목에 걸렸다. 내가 잘못해서 혼난다는 생각보다는 나의 울음이 부모님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는 공포가 나를 압도했다. 깨진 조각에 베인 손가락보다 "너까지 왜 그러냐"는 그 말이 심장을 더 깊이 베고 지나갔다.
나의 아픔은 어른들의 피곤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내 눈을 보면 금방 눈물이 뚜루룩 떨어질것 같다고 한다.)
내가 울지 않아야 집안이 조용해졌다. 내가 참아야 부모님의 미간 주름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나는 그렇게 우리 집의 평화를 지키는 작은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했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고, 꾹 참아내는 것이 착한 아이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참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잘 나지 않았다. 정말 힘들고 지쳐서 누군가 붙잡고 엉엉 울고 싶은 날에도, 내 눈물샘은 말라버린 우물처럼 뻑뻑하기만 했다. 대신 심장이 돌덩이를 얹은 듯 묵직하게 조여 온다. 몸이 대신 울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길거리에서 목청껏 울어재끼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부러움마저 느낀다. 저렇게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도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저 아이가 가진 울 권리가 사무치게 부럽다.
나는 언제쯤이면 내 안의 그 아이에게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허락해 줄 수 있을까, 참느라 짓이겨진 입술의 상처가 아물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