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서비스노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 11

'0시간 계약', 근로시간 정함이 없는 재가요양보호사

by 강은희

나는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서 찾았다. 총 70조로 구성된 노인장기요양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어디에도 재가요양보호사를 ‘0시간 계약’으로부터 보호하는 조항은 없다. 이에 나는 2019년, 국민입법센터 대표 이정희 변호사를 비롯한 다섯 명의 변호사들과 함께 「요양보호사 노동조건 및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연구·작성하였다. 이 법안에는 재가요양보호사의 최소 근로시간을 주 15시간 이상 보장하고, 이용자의 사정으로 인해 해고될 경우 휴업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센터장이 자르든 보호자가 자르든 어르신이 자르든 방어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거예요.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퇴근하고 내일 뵙겠습니다, 했는데 오후 5시에 선생님한테 전화 왔어요. 할아버지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 했다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옛날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좋았다는 얘기만 계속했다는 거예요. 센터장이 한... 두세 달은 서로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했는데 소용없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재가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 재가요양센터와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이 담긴 계약서를 작성한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재가요양보호사들을 위해 표준근로계약서를 마련해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로개시일, 근무장소, 업무 내용, 근로시간, 휴게시간, 임금, 휴일 등이 포함된다. 근로시간은 단지 노동을 제공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 일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가요양보호사들의 근로시간은 어떠할까.


2024년 재가요양보호사의 이동시간을 조사하면서 받아본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이 비어 있었다. 근로기간은 2024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이지만 시간제라는 근무형태만 있을 뿐이고 근무일과 휴일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재가요양보호사처럼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는 노동자들의 계약을 흔히 ‘제로아워 계약(0시간 계약)’이라 부른다. 이런 계약에서 사용자는 노동자가 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임금을 지급하면 되며, 일정한 근로시간을 보장할 의무는 없다. 실제로 재가요양보호사의 근무일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주 바뀐다. 지난주에 30시간을 일했더라도 다음 주에도 동일한 시간만큼 일할 수 있을지 보장되지 않는다. 이들은 항상 고용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다.




“어르신이 저를 그만두게 한 이유는 뭐였냐면, 요양보호사가 안 오면 그 돈을 자식들이 자기한테 주지 않겠냐는 거였어요. 가정 내의 문제로 저는 그냥 쉽게 해고가 되더라고요”


2023년, 나는 재가방문요양보호사 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용자의 사정으로 갑자기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50.9%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중 해고수당을 받았다는 응답은 2.4%에 불과했다. 근로시간이 정해진 일반 노동자라면 사용자의 사정으로 일을 못 하게 되는 경우 평균 임금의 70% 이상을 ‘휴업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재가요양보호사들은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수급자의 병원 입원이나 서비스 중단 요청만으로도 하루 만에 실직 상태가 된다.


돌봄서비스노동조합은 이용자가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재가센터가 다른 이용자를 연결해주거나 일을 하지 못한 기간 동안 휴업수당 또는 해고수당을 지급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0시간 계약’ 노동자에게 이를 지급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당하고 있다.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은 요양보호사들이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거절이 곧 해고로 이어지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할머니 혼자 계셨는데 대문을 청소하라는 거예요. 다음 날 센터 가서 그 얘기했어요. 센터에서 전화해 가지고 요양사 업무 아니라고 말을 해야 되지 않냐, 그랬더니 이걸 말하면 그만 오라고 할 까봐 안 하는 거예요.”


“목욕서비스 같은 경우도 저희는 샤워 수준이지 목욕이 아니거든요. 목욕 없어요라고 했는데 하다 보면은 그 요구를 하세요. 센터장님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목욕은 제가 따로 수가를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얘기를 하면 그럼 그만두세요 오지 말래요. 이게 되는 거예요. 보호자가 되었건 센터가 되었건 사람을 갈아버리는 거예요. 중간에. 그러고 나서 중요한 건 선생님 오늘 중단되었으니까 내일 오셔서 퇴사서류까지 같이 쓰세요. 지금까지 겪어 본 센터들 중에 어떤 센터도 일을 끊기면 끊기는 대로 퇴직서를 쓰고 한두 달 있다가 다시 연락하지 연장해 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못 봤어요.”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재가요양보호사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해당 권고문에서는 수급자가 성차별적 인식으로 여성 돌봄노동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에 부당대우가 빈번하다고 지적하며, 「사회안전망 밖 돌봄노동자」(2020) 연구를 인용했다. 이 연구에서는 요양보호사가 “아무 일이나 시켜도 되는 사람”,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현실이 요양보호사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가 만난 요양보호사들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들려주었다.




나는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서 찾았다. 총 70조로 구성된 노인장기요양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어디에도 재가요양보호사를 ‘0시간 계약’으로부터 보호하는 조항은 없다. 이에 나는 2019년, 국민입법센터 대표 이정희 변호사를 비롯한 다섯 명의 변호사들과 함께 「요양보호사 노동조건 및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을 연구·작성하였다. 이 법안에는 재가요양보호사의 최소 근로시간을 주 15시간 이상 보장하고, 이용자의 사정으로 인해 해고될 경우 휴업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장기요양급여등급을 받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돌볼 요양보호사는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이 현상은 이미 2024년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요양보호사 일자리가 이대로라면 부족을 메꾸기는 힘들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고용과 처우가 불안정한 돌봄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바꾸기 위한 제도권의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가 2021년 2월 6일 오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41만 요양보호사를 위한 특별법제정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rborplus.co.kr


출처 : 참여와혁신(https://www.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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