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머슴, 비정규직 머슴 그리고 중간 머슴
IMF는 정말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제도가 위기탈출이라는 명분으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비전도 없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론 기업의 효율성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고용주(기업주)들 입장에서야 적은 연봉으로 편하게 해고 가능한 구조이니 환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용인(머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둘로 나뉘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이후 양극화를 부추기는 큰 촉매제가 되었다.
당시 정규직이었던 나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IMF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코스닥과 중소기업 위주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IT버블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여의도의 증권회사들도 덩달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증권사의 법인영업팀이었던 우리들도 매매수수료로 돈을 쓸어 담기 바빴다. 자고 일어나면 형님 영업으로 하루에도 수억씩 수수료를 챙겼고 법인영업자들은 세상 무서울 거 없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성과급 배분의 시간이 되었다.
성과 배분의 약속을 받은 나 또한 손익을 보고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내 연봉의 몇 배를 더 줄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담당 부장님께서는 긴 칼을 감춘 대신에 예전 신라의 골품제도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기 시작하셨다. 같이 입사한 사람들은 성골 또는 진골 머슴이었고 나를 비롯한 기존 직원들은 육두품 이하 사두품 머슴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손익을 거두었고 같이 열심히 일하였지만, 불평등하다고 생각된 성과급 배분은 어리고 젊은 나에겐 상당한 허탈감을 남겨 주었을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이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는 1950년 6.25 전쟁 이후 모든 사람이 기득권을 잃고 모두가 평등하게 시작할 때였지 않았던가!
사람 마음이 간사스러워 똑같이 힘든 것은 웃으며 참아 내지만, 상대적인 빈곤엔 인내하기가 힘들었다.
논공행상의 결과를 받아 들고 정규직 머슴이지만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함을 억울해하며 밴딩이 마음을 가진 31살의 젊은 중간머슴은 또다시 이직을 꿈꾸면서도 이 부서가 얼마나 돈을 계속 벌 수 있을지 살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