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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라 리키 Mar 05. 2023

5. 성장한 머슴 이야기

나는 더 이상 10년 전 겁쟁이가 아니었다

임원실로 호출당한 나는 심호흡과 함께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나간 후 문을 노크했다.


 담당 임원은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김 차장 법인 영업팀에서 오래 일했네,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지? 

파생상품(선물옵션) 경력도 있던데 그쪽 자리로 보직 변경은 어떤 신가?"

내 의사를 먼저 물어보기보단 본인들 조직의 빈자리에 맞춰 볼 심산인 듯했다.


" 이사님  제가 국제부 경력 4년에 법인영업경력 10여 년입니다. 따라서 젤 잘하는 게 부분이 기관 주식영업입니다.  파생상품 영업도 가능하지만 저를 가장 잘 쓰시는 판단은 아닐 거 같습니다. 제겐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국내 기관고객들과 강력한 신뢰관계가 이미 성립되어 있고  홍콩과 싱가포르에 외국계 기관 고객도 있어 현재 구조로는 저만이 주문실행 처리를 할 수 있을 거로 생각됩니다. 다른 세일즈 멤버 분들과 함께 저를 포함해 기관 분장을 새롭게 함 짜보시면 대내외적으로 팀의 시너지 효과 및 시장에서도 평판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10년 전 더 이상 꼬맹이 머슴이 아니었다. 나름 14년 경력의 베테랑이었고 처자식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기도 했다. 

 칼자루를 쥐었다는 이유로 이미 내 분야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나를 자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배제한다면 서로에게 마이너스 일거라는 판단이 있었다.

 담당 이사는 약간 당황한 듯했다. 이미 본인들이 짜놓은 사전 인력배치 계획이 있었기에 형식적인 면담만 하면 내가 수긍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조목조목 짚어가며 이야기해 나가니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2~3일의 조정회의를 마치고 나와 나를 따르는 2명의 대리급 직원을 제외하고 모든 기존 직원은 보직해임되거나 다른 부서로 전출되었다. 그리고 나는 기존에 맡고 있었던 2~3개 기관을 조정하는 선에서 국내외 법인영업 세일즈를 계속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번에도 나는 다시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크게 두려워하거나 자존심을 구겨가며 사정하지는 않았다. 받을 건 받고 줄 수 있는 부분은 주겠다는 머슴끼리의 거래를 한 것이었다.

 아직 머리가 완전히 크지 않은 머슴인데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 당신 편이 되는 게 향후 당신들께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나름 당당한 태도가 그들에게 어필이 된 거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연을 맺고 있는 그 담당 임원께서는 그때 당시 나에 대한 느낌을 돌이켜 말씀하셨었다. 


"뭐 이런 당돌하고 자신 만만한 놈이 왜 한 번도 회사를 안 옮기고 여기에 계속 있는 거지? "


예상 밖이긴 하지만  실적도 나쁘지 않으니 함 지켜보기로 하고, 나로 인해 생긴 선물옵션팀의 빈자리엔 새롭게 외부 인원을 영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마도 머슴들에게 있어서 "주인의식"이란 주인을 의식하며 직장 생활을 하라는 것인데 정말로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처럼 회사와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흥미로운 느낌이 들었던 거 같다.

 어찌했던 나는 불필요한 이직없이 새로운 팀과 함께 그로부터 몇 년간 직장생활의 최전성기를 보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 다시 도전이 올지 모르겠지만 나름 멋진 머슴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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