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분야든 상위 1% 이내의 톱스타들이 있지만 그 반대로 하위에 속한 무명들도 무수히 많은 게 현실이다. 무명이 스타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하늘의 별따기 일지 모른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무명에서 갖은 고생 끝에 스타가 된 눈물 어린 스토리를 프로야구, 정치, 가요의 세분야로 나눠서 정리해본다.
프로야구 선수 중에는 고액의 연봉을 받고 화려하게 입단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연습생으로 초라하게 시작해 더그아웃의 벤치워머 신세로 줄곧 지내다 예고 없이 찾아온 기회를 극적으로 살리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다음 희망의 불씨를 지펴 피나는 노력으로 스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연습생의 신화를 이룬 대표적 선수가 빙그레 이글스 타자 장종훈(68년생)이다. 고교시절 소속팀 세광고가 과거엔 우승을 한번 했지만 자기 때엔 전국대회 4강에 오른 적이 없어 그는 어느 프로팀에도 지명되지 못했고 대학 진학도 어려웠다. 따라서 소속팀 감독이 빙그레 이글스에 추천, 입단 테스트를 하여 1986년 베팅볼 투수로 300만 원 연봉을 받고 입단, 불펜 포수 역할까지 하면서 프로에 첫발을 디뎠다. 그러다 주전 내야수 한 명이 부상으로 결장하는 바람에 기회가 왔고 중요한 찬스에서 적시타를 치며 감독의 눈에 들게 되었으며 연습생이 졸지에 붙박이 주전이 되었다. 드디어 1992년 그는 4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프로야구 출범 후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한 시즌 40개 홈런 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프로야구의 엔트리에 들어가는 선수는 대개 고교나 대학 야구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드래프트 된 선수들이며 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그 자리를 지킨 선수들이다. 따라서 신인이 베테랑도 힘들다는 20(홈런)-20(도루) 혹은 30-30을 달성하는 경우는 한마디로 야구천재라고 한다. 이런 프로야구의 숨 막힌 경쟁구도에서 연습생 출신이 일단 주전이 되는 것 자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며 더군다나 스타가 되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적이다.
스포츠와 다른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간혹 있다. 과거 사법고시의 경우 최종 합격자가 서른 명 정도였는데 이중 고졸 합격자는 몇 년에 한 명꼴이었다고 한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75년 17회 사법고시에서 4수 끝에 합격한 유일한 고졸 합격자였다. 사법 연수원에서 S대 법대 출신들이 어울려 식사를 할 때 그는 잠바 차림으로 늘 혼자 점심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1년간 판사 생활을 하다 변호사로 개업한 후 13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무명의 초선 의원이던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1988년에 있던 5 공비리 청문회였다. 통일민주당 의원 노무현은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지며 정주영 현대 회장과 장세동 안기부장을 몰아붙였으며 논리적인 사고와 남다른 소신이 TV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전달되며 청문회 스타로 부상하였다. 이때 평민당 총재 DJ는 노무현의 빈틈없는 자료 제시와 증인 심문 능력 및 정치인으로서의 소신을 높이 평가하여 평민당 의원들에게 그와 같이 의정활동을 하란 말을 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DJ는 자신의 젊은 시절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노무현에게서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상고를 나와 자수성가했다는 점, 게다가 논리적인 사고와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에 날카로움까지 판박이가 아닐까 한다.
스포츠와 정치 이외에도 오랜 무명시절을 보내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가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설운도(1958년생). 1973년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1982년 KBS의 '신인의 탄생'을 통해 데뷔하였다. 처음 예명이 나운도였는데 나훈아를 흉내 낸다고 할까 봐 설운도라 바꿨다.
설운도는 성인이 되자마자 고향 부산을 떠나 상경, 업소에서 오디션을 통과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록을 불렀다고 한다. 그룹사운드 친구들이 나이트쇼에 못 나올 때 무대에 대신 서서 하루에 100곡씩을 불렀다고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다.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 '잃어버린 30년'을 그가 중간중간 불렀고 그 곡이 계속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며 설운도란 가수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떠나온 고향 부산의 가족들까지 TV로 자신을 알아보고는 잃어버린 그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TV의 '히든싱어'에 나와서 무명가수들 앞에서 그가 했던 말이 자신이 무명시절 바닷가에 몸을 던지려 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까지 해놓은 노력이 아까워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힘들던 무명가수시절 자신의 노래를 듣고 앞으로 반드시 성공할 거란 격려를 해 주었던 선배 가수가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남진이었다.
이상 프로야구, 정치, 가요 분야에서 무명시절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스타가 된 스토리를 스케치하였다. 무명시절을 거쳐 유명해진 사람들의 공통점은 첫째, 어린 시절 그다지 부유하지 못했지만 나름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란 점이다. 만일 이들이 재능이 없었다면 스타가 되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둘째, 이들은 지겹고도 힘겨운 무명시절에도 한눈팔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셋째, 이들에겐 정말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으며 그 기회를 기가 막히게 성공시켰다.
모르긴 해도 무명시절 나름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성공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 가운데 끝끝내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무수히 많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스타가 된 사람들은 하늘에서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성공시켰다고 밖에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어느 분야든 성공의 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불과 몇 명이지만 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은 수천 아니 수만 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 년 전 TV 가요대상에서 그룹사운드 부문 상을 수상했던 송골매의 배철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가 이렇게 상을 받지만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 어디서 묵묵히 연습에 몰두하는 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