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나온 영화 '박하사탕'은 집도 재산도 잃고 삶이 망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마흔 살이 된 김영호(설경구 분)은 20년 만에 과거 야학 동료들이 모여있는 '가리봉 동우회'에 나타나서 제멋대로 노래를 부르며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위기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곳은 20년 전 첫사랑 윤순임 (문소리 분)과 데이트하던 장소였다. 그리고 결국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 위로 올라가 기차가 달려오는데도 두 팔을 벌려 "나 다시 돌아갈래"하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던진다.
시간은 거꾸로 돌아가 1979년 가을 구로공단 야학에 다니던 영호와 순임은 친구들과 함께 계곡으로 소풍을 나왔다. 순임은 자신이 박하사탕 공장에서 일한다고 얘기하고 영호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서로 좋아하게 된다. 눈부신 햇살 아래서 영호는 순임이 건네준 박하사탕을 먹으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몸을 던진 바로 그 장소에서 첫사랑 순임과 달콤한 얘기를 나누는데 그다음 그의 소망은 파도처럼 부서지고 만다.
영호는 입대하여 80년 5월 전방 보병사단의 신병이 되는데 순임은 면회를 가지만 비상사 태하에서 면회를 하지 못한다. 때마침 부대가 긴급 출동을 하는데 영호가 급하게 군장을 챙기다 순임이 보내줘서 하나씩 모아둔 박하사탕 유리병이 땅에 떨어져서 박하사탕이 사방에 흩어진다. 영호는 군용 트럭에서 헛걸음치는 순임을 보게 된다. 영호는 부대가 한밤중에 광주에 도착하여 누가 쏘았는지도 모르는 오발탄을 군화에 맞게 되고 동료들과 뒤처져 있을 때 광주역 주변에서 귀가하던 한 여고생이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는데 그때 동료들이 자신을 치료해 주려 오기 전 빨리 도망가라고 하며 얼떨결에 위협 총을 쏘는데 그 총탄에 맞아 결국 그 여학생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영호는 전역을 하고 성격상 맞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던 경찰이 된다. 선배 경찰들이 학생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조사하고 정보를 빼내기 위해 고문하는 것을 보던 영호는 처음 안절부절못하지만 선배의 권유로 고문을 집행하면서 본격 악질 경찰의 길을 간다. 그때 순임은 영호를 찾아오는데 영호는 자신의 순수함을 거부하듯이 순임을 거부한다. 순임은 예전에 영호가 사진 찍기를 좋아한 걸 기억하고 사진기를 선물하지만 기차를 타고 떠나는 순임에게 사진기를 떠맡긴다. 아직 순임을 마음속에 두고 있지만 광주 민주화운동 때 진압군으로 나가서 어린 여고생을 죽인 죄책감으로 순수한 순임을 거부하고 자신을 짝사랑하던 식당 종업원 양홍자(김여진 분)를 택한다.
1994년 영호는 경찰을 그만두고 가구점 사업을 하며 예전의 영호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간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분노를 표출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 가구점의 여직원과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결국 동업자의 배신으로 사업은 망하고 배우자와도 이혼을 하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1999년 봄 사기당하고 이혼당한 영호는
어느 날 늦은 시간에 어렵게 구한 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데 어느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그 남자는 나지막한 소리로 순임을 아느냐고 물어본다. 그는 순임의 남편이고 순임은 죽음의 문턱에서 그토록 영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한다. 영호는 병원으로 향하지만 순임은 혼수상태로 그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군 복무 중 편지를 보낼 때마다 순임은 박하사탕을 하나씩 넣어 보냈는데 영호는 병원에 오기 전 시장에서 사 온 박하사탕 유리통을 들고 "당신이 군대에 보내준 박하사탕을 모아둔 걸 가지고 왔다" 고 거짓말을 하며 오열하다가 뛰쳐나간다. 그 울음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순임에 대한 고마움과 죽음을 앞에 둔 그녀의 연민 때문인 것이었다.
순임의 남편은 아내가 전해주라고 한다면서 카메라를 전해준다. 하지만 영호는 카메라를 단돈 4만 원에 팔아버리고 속에 있던 필름을 꺼내서 돌려받는데 빛에 노출되어 다시는 못쓰게 되며 끝내 오열하고 만다. 그 후 영호는 자신이 삶의 굴곡 속에서 던져 버린 순수함을 애타게 갈구하면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달려오는 기차에 던진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박하사탕은 무엇보다 순수함 또한 첫사랑을 상징한다. 입에 넣을 때 느껴지는 박하 맛은 입안을 얼얼하게 자극하여 오감을 잠시 마비시키는 마치 첫사랑의 맛을 느끼게 한다. 첫사랑이란 경험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어찌 보면 깨어지기 쉬운 유리와도 같고 위험하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감정이 밀려올 경우 자신의 이성적 판단력이 무뎌지며 상대의 단점도 죄다 가려져 상대가 마치 천사와 같은 존재로 보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사랑은 평생 마음의 상처나 짐이 될 수도 있다.
20대의 순수한 청년 영호는 사회의 불의에 맞서며 야학에서 일하였고 그의 꿈은 오로지 사진 찍기라고 할 정도로 순수하고 소박하였다. 하지만 군 입대하여 비상사 태하에서 본인의 의지와 달리 무고한 여고생을 살해하며 자신의 인생이 굴곡을 겪기 시작한다. 거기서 시작된 죄책감이 계속 순수했던 자신을 내치며 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그 후 경찰이 되어 운동권 학생을 고문하며 타락의 정도가 오히려 심해진다. 경찰을 그만두고 가구점을 하면서도 때 묻은 모습으로 결국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영호란 극단적인 인물 아닌 일반인의 경우에도 20대의 순수함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 조금씩 변색되어 간다. '박하사탕'과 '사진 찍기'만으로 삶의 행복을 이어 나가긴 어렵다.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집도 돈도 사회적 지위도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요구가 악하지 않고 사회와 자신 및 자신의 가족에까지 유익할 수 있는 삶의 행로가 펼쳐지길 바랄 뿐이다.
20대의 순수함이 영호의 경우처럼 파괴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는 극단적이라 할 수 있다. 20대 초반의 순수함은 남자의 경우 군 복무, 결혼, 사회생활을 통해 모습이 조금씩은 바뀌게 되지만 통째로 바뀌고 부정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도 20대의 순수함과 그 추억은 소중하다. 하지만 한창때인 우리 자녀들의 경우 그들의 20대의 추억이 우리보단 아름답고 멋진 모습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