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미국에 가는 일이 마치 국내여행만큼이나 부담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우리가 20대 때만 해도 미국에 가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특히 그때는 대한민국이 5 공화국 때였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 이전이었다. 나는 82~
82~ 85년간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 별 준비도 없이 86년 8.15일 410달러 미국행 노스웨스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도착지가 서부의 시애틀이었고 거기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미네아폴리스로 갔다 최종 목적지 조지아주 애틀랜타로 가게 되어 있었는데 기상관계로 시애틀에 연착, 미네아폴리스에서 갈아 탈 비행기를 놓쳐 하루를 모텔에서 자고 가야만 하였다. 서울에서 떠날 때 비행기에서 밤 시간에 갑자기 바깥이 쨍쨍해지며 시차로 고생하기 시작하였다. 하루를 예정 없던 곳에서 시차로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작은 비행기로 목적지 애틀랜타에 도착. 그때부터 생고생이 시작되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은 크게 교민과 유학생인데 교민의 경우 미국에서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와 같은 전문직과, grocery, 세탁소 등을 하는 자영업자로 구분되었다. 이들도 미국 온 지 제법 햇수가 된 사람들은 자리가 잡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매일 바쁘게 생활을 하며 자녀 뒷바라지를 하는 여유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유학생의 경우 학부, 석사, 박사 과정으로 나뉘어 학위를 성공적으로 마칠 경우 박사의 경우는 미국이나 국내의 대학교수가 되었다. 남자가 공부할 동안 배우자들은 가게나 식당 등에서 파트타임으로 시간당 5달러씩 벌며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하고 미국에 가서 낳은 자녀들은 미국 시민권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당시 유학 간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 중 미국에서 의사나 전문직 공무원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당시 이민으로 미국에 간 한국 사람의 자녀 중 현재 국내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지인 중 한 사람의 아들이 '에릭남'이다.
야틀란타는 뉴욕이나 LA보단 작지만 그래도 꽤 큰 도시여서 한국 식당, 마트, 술집에 당구장까지 있었고 내가 떠난 이후 올림픽을 하면서 한국 교민 수가 크게 늘고 물가도 무척 올랐다고 한다. 애틀란타에서 아는 사람 몇몇과 렌터카를 대여해서 뉴욕, 보스턴, 워싱턴 DC 갔을 때의 추억이 아직 머리에 남아 있다. 첫해 겨울엔 몇몇 지인들과 플로라다에 내려가 올란도의 디즈니월드에서부터 마이애미까지 간 적도 있는데 12월이었지만 마이애미는 비키니 차림에 해수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에 혼자 군미필로 가서 거기서 시민권자와 (위장) 결혼해서 영주권을 받은 후 이혼하여 미국 직장에 취업하여 눌러앉은 사람도 봤고 거기서 CPA , 미보험 계리인 등 실용적인 자격증을 취득하여 미국 직장에 영주권 해결 조건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경영학 석사과정(MBA)으로 유학을 가서 현지에서 취업이 용이한 과목으로 공부를 하다 다시 경영학으로 바꿔서 공부를 마치게 되어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쳤고 늦게 귀국해서 군입대를 하여 꽤 고생을 하였다.
지금도 혹 미국에 가서 어찌 뒹굴면서 살 방법을 찾아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허황된 생각을 버리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이 발전하여 잘 살게 되자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오는 사람들이 늘기도 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은 전 세계가 인정해 줄 정도이다. 세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라가 무려 92개국(?)이나 된다. 대한민국에서 취업이 어려운 경우 낙담 말고 한국어 가르치는 나라에 한국어 강사로 지원할 것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