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이란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 정확히 알진 못한다. 고인이 된 DJ의 말에 의하면 이승만 정부 때엔 영호남 차별이란 게 없었는데 박정희 때부터 생긴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켜 두 번 대통령을 하고 3선 개헌을 해서 71년도에 혜성같이 나타나 자신을 위협했던 DJ와 경합하여 100만 표 차이로 겨우 이겼다. 그 선거 때 박정희 선거본부에서 야색이 강한 부산 등 경남지역에 "김대중으로 뭉쳐 호남인이여 일어나자"라는 문구를 온갖 벽보마다 도배하며 영남인들의 심기를 건드려 큰 재미를 봤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정치판에서는 지역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모르긴 해도 조선시대에도 지역적인 갈등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17세기 말 숙종 때 갑술환국 (갑술년 급격한 정계개편) 이후 경상도는 계속 찬밥신세가 되고 조정은 충청도판이 되었다. 19세기 초에는 서북인 차별로 홍경래의 난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이북에서도 함경도와 평안도 간 오래된 지역감정이 있어 왔다. 고인이 된 장성택은 함경도 출신인데 평안도 출신 김일성 딸과 결혼하려 할 때 김일성이 크게 반대했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엔 각 정권별로 지역색이란 게 있었다. 이승만 정권 때는 경기도 이천 출신 주먹들이 대거 정계로 몰려들었다. 대통령 경호실장 곽영주를 비롯 이정재, 임수, 유지광 등.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에는 군출신 정치인들이 일부는 경상도 중심 이남, 일부는 이북으로 나뉘었다. 이남 출신이 김종필, 이후락, 윤필용, 김재규, 차지철. 이북 출신이 정일권, 김형욱, 백선엽 등. 그 후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며 이북 출신은 몰락하고 경상도 출신이 군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 후 김영삼, 김대중으로 가면서 PK, 호남으로 인맥이 재구성되었다.
어디든 권력을 잡을 경우 제일 먼저 추종자를 앉히는 곳이 국방부와 검찰청. 그와 더불어 방송사. 한때 DJ가 대통령이 되며 TV에서 인상을 쓰며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TV 드라마에도 건달들은 모두 전라도 말씨를 쓰고 있다"라고 했는데 그다음부터 드라마에 등장하는 건달은 어지간하면 경상도 말을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역감정의 골이 가장 깊었을 때가 박정희와 전두환 집권 시기. 박정희는 영호남 간 지역감정을 이용하며 장기집권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 시절 군입대 시 특정 기수가 경상도 중심이면 그다음은 전라도 중심으로 기수끼리 지역적으로 서로 으르렁거리게 했다는 말도 있었다. 한나라의 국민들끼리 서로 사이가 좋지 않게 함으로써 한 특정 지역의 표를 자기 것으로 확보하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한심한 짓거리였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의 학살로 권력을 잡을 때 민주화를 외치는 그 지역 사람들을 마치 폭도로 몰고 갔다. 아직 그는 자신의 과거 만행이 정당했다고 잡아떼고만 있다.
지역감정 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골이 깊은 지역감정이 영호남 간 지역감정이다. 그 근원은 모르긴 해도 삼국시대까지 올라갈지 모른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하며 백제인들이 대거 배 타고 일본으로 갔거나 신라의 노비가 되었고 그 후 조선까지 와서도 호남은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호남사람들이 전국으로 흩어져서 살게 되었는데 자리를 잡기가 힘들었고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느낀 호남인들은 똘똘 뭉쳐 서로 방패가 되어 주기도 했다. 83년도 해태 타이거스가 코리언시리즈 우승할 당시 호남의 응원석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불렀던 노래가 '목포의 눈물'. 호남을 대표하기도 했고 핍박의 역사 호남인의 애환을 표현하기도 했다.
호남이라도 전남과 전북의 기질이 다르고 호남에서 내내 살아온 호남인들과 서울, 부산 등에 이주해서 사는 호남인들도 기질면에서 약간 다르다고 한다. 객지에서 별 가진 것도 없이 생존하려다 보면 일단 어렵고 호남사람 누군가가 좋지 않은 구설수에 오를 경우 전체 호남인들이 도매급으로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같은 경상도끼리도 지역적인 감정이 없지 않다. 경북을 대표하는 대구와 경남을 대표하는 부산이 그러하다. 대구사람들 중에서 대구를 욕보인 사람들이 몇몇 기억난다. 속과 겉이 달라 내 앞에서 남들 욕을 하더니 남들 앞에서 내 욕만 목이 터지게 하며 다녔던 대구 인간 하나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는 내 앞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웃으며 접근했다 목적을 달성한 후엔 돌아서자마자 있는 욕 없는 욕 하면서 다니기도 한 탁월한 연기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또 한 명의 대구를 빛낸 사람은 돈을 빌려 계속 떼먹고 그 뒤 돈 관련 소송이 벌어져 동남아로 피신했다 다시 국내에 들어와 세종시에서 동업으로 학원을 하다 또 돈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던 인물.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에서 토막살인이 제일 먼저 발생했던 곳이 부산. 우리 초등학교 때 몽타주에 점이 있던 토막살인범은 검거됐는지 아직 모르겠다. 그 후에도 토막살인은 발생만 했다면 부산이었다.
결국 지역감정이란 감정은 주관적일지도 모른다. 특정 지역 사람들의 특정 행실로 인해 몇 번씩 피해를 보게 될 경우 어느덧 그것이 그 지역의 특성이 되어버리고 머리에 "어느 지역 인간들 상종 못할 놈들"하고 또렷이 각인이 되어 버린다.
마지막으로 성서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을 언급하며 마무리한다. 사마리아는 과거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앗시리아와 이스라엘 간에 태어난 혼혈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성서에서는 길에서 강도를 당한 사람을 보고 이스라엘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른 체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축에 태워 여관 주인에게 맡기고 돈까지 주어 보호하게 했다고 나온다. 편견이 만들어낸 지역감정. 나도 특정지역에 대한 별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적 있었고 아직도 그런 감정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지만 인제 환갑도 다 되어가는 나이에 그러한 편견은 떨쳐 버리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크지도 않은 땅덩어리에 텃세, 지역감정이 만연되어 있다. 땅덩어리가 미국이나 중국처럼 클 경우라면 오히려 지역적인 편견이 적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남북이 언젠가는 합쳐질 때 남북 간 지역감정이 새로운 이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