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되어 있다. 옛말에 "까마귀 곁에 백로야 가지 말라"라고 했다. 1987년 6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고인 노태우가 총리 후보자로 사회적인 존경을 받던 대학교수 한 분을 지목했다. 그래서 시내 한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꺼냈는데 후보자는 거절을 하였다. 당시 거절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총장 시절 총학생회장을 했던 제자가 구속되어 있는데 자신이 그 학생을 구속시킨 사람 옆에서 총리로 TV에 대통령 옆에 서있는 모습이 나올 경우 양심의 가책도 생기고 비굴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정권에서도 장관 제의를 거절하였다.
그 총리 후보자는 강직한 학자였는데 총장 시절 당시 여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였던 학생들을 정부에서 중징계하라고 할 때 말을 듣지 않아 총장에 해임된 바 있었고 불의와는 타협을 하지 않았던 분이었다. 나의 친구 하나는 그분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대학교수란 사람이 정치권에서 자리 하나 준다고 가는 건 별로 보기 좋지 않고 학교를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6 공화국은 5 공화국의 연장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도 못했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별 치적도 없이 사회적 혼란만 키운 채 삼당합당으로 탄생한 문민정부로 넘어갔다. 결과적으로도 총리 제안을 거절했던 교수는 바람직한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도 유유상종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영면했을 당시 언론에서는 마지막 독립군이 세상을 떠났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게이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때 목숨을 걸고 탈령을 하여 중국 유격대에 합류한 다음 도중에 만났던 또 다른 탈령병 장준하와 함께 6천 리 길을 걸어 중경의 임시정부로 갔다. 그는 독립군이 되어 미군 지휘 하에 훈련을 받고 OSS대원으로 국내 투입 임무를 받았지만 일본의 패망으로 졸지에 해방이 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가 김준엽 전고대 총장이다.
김준 엽전에 총장을 했던 김 모 총장은 5 공화국에 총리로 제안을 받아 거부하지 않고 수락했는데 결국은 들러리 역할이나 하다 별 좋은 소리도 듣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미지가 나쁜 학자가 아니었기에 거절했더라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각 부처 장관 후보자를 놓고 여러 말이 오간다. 현재의 분위기는 냉정하게 판단하여 누구 하나 고사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자신을 거론해 주길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경제나 외교의 경우 실질적인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또한 지명자들 중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 봉사할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구설수에 오르는 과거 일을 부인하거나 덮기 바쁜 모양새이다. 장관이 될 때 웬 떡이냐 하고 덥석 자리에 올라 젯밥에만 눈이 어두울 경우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 나물에 그 밥, 즉 유유상종이란 말을 듣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