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40주년이 되는데 20주년, 30주년에는 홈커밍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40주년 행사는 말도 나오지 않는데 다들 퇴직하고 노년기에 접어들어 그런가 싶어 진다. 지금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현재 하는 일과 과거 고교시절의 모습이 겹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당시 학구파였거나 두뇌가 좋았던 친구들 중 교수가 된 경우가 있다. 학창 시절 공부에 큰 관심이 없던 친구들은 당시의 갑갑한 생활 속에서 그들만의 해소책을 나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 때 모범생들이 사회에서 열등생인 경우가 있고 반대로 학교 때 열등생들이 사회에서 우등생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체로 보면 학교 때 성실했던 경우는 사회에서도 기본 이상의 삶은 살게 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는 중학교 때와 달리 한번 공부와 멀어지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어렵다. 혈기는 왕성하지만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인 이들은 공부보다는 친구들을 보러 학교에 가는데 그들에게 수업시간은 지겨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가장 혐오스러운 교사는 수업 종료 벨이 울린 후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였다. 이들은 공부로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을 채울 뭔가를 찾아 방황하다 일찍 음주와 흡연을 배우고 그 와중에 싸움질 혹은 이성을 만나 교제를 하기도 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고교생들의 방황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일탈이 비교적 큰 문제없이 지나가면 다행인데 간혹 큰 싸움이 벌어질 경우 자퇴로 이어지며 이성교제를 하다 졸지에 예비 가장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스스로 혹은 부모가 나서 예비 미혼모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사태를 수습하기도 했다.
당시 공부에 별 취미를 가지지 못했던 한 친구는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교육위원회 주최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까지 받았는데 당시 국어교사이던 담임에게 자신은 국문과에 진학해서 작가로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 후 4년제 대학을 가지 못해 2년제 대학을 졸업했는데 술 때문인지 40대 초 간경화를 앓다가 일찍 세상을 하직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다른 것에 나름 재미를 붙여 그 길로 가서 성공한 경우도 있다. 당시 모교에는 비공인 그룹사운드가 있었는데 그들은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악기를 가져와서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했고 야외에서 모처럼 앰프 음악 소리를 들은 우리는 흥에 겨워 춤을 추기도 했다. 당시 그룹사운드의 드러머였던 친구는 대학 때에도 전공보다 작곡에 심취하여 강변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 후 많은 인기곡을 작곡, 편곡했고 영화나 TV 히트 드라마의 OST도 맡으며 대중음악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고교시절 3학년 같은 반에서 이미 별세한 친구가 다섯이나 되고 대학교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은퇴한 상태이다. 만일 지금 10대로 돌아가 고3 교실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게 한다면 과연 해낼 수나 있을지 의문이 간다. 40년 전 입시를 앞둔 불안감과 압박감 속에서 저마다 사투를 벌였건만 그때의 노력이 현재의 삶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을는지는 또한 의문이다. 나의 경우 현재 비록 은퇴 후이긴 하지만 하는 일이 없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며 글쓰기를 취미 삼아 살아온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