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겉과 속

by 최봉기

어린 시절에는 세상의 일들이 예상한 대로 보기 좋게 이루어지며 또한 인간들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투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그런 생각은 세상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가령 나 앞에서 남의 욕을 하는 사람은 반대로 남 앞에 가서는 나의 욕을 한다는 것이 이젠 불 보듯 뻔한 일이건만 과거엔 그런 것조차 잘 모르고 살았고, 나의 도움이 필요할 때 나 앞에서 내가 듣기 좋은 얘길 하며 비위를 맞추던 사람도 때에 따라서는 남들 앞에서 내 험담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약아빠진 사람들로부터 이용당하거나 사기의 표적이 되기 쉽다. 어느 성당에서 성전을 건립할 때 공사업자 하나가 수녀를 찾아와 공사에 관해 브리핑하던 걸 어떤 신부가 듣고는 "의심이 가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던 그 수녀는 인간을 믿어야 한다면서 그 업자의 요구대로 돈을 줬다 사기를 당하게 되었다. 조심하란 말을 했던 신부는 자신의 경험상 제대로 된 건설업자들은 '곤조'란 게 있어 주관이 강한데 그 업자는 그런 데가 없이 말만 뻔지르하게 하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장은 풍채가 좋고 언변이 뛰어나 겉으로 꽤나 그럴싸한 교육자였다. 입학식 때 학교를 찾은 학부모, 특히 여성들은 인물이 좋고 열정과 소신이 느껴지는 그의 유창한 연설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졸업 후 그 교장의 덮혀진 비리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는데 한마디로 교육자의 탈을 쓴 위선자였다. 그는 공금횡령, 입학부정에 성희롱까지 저지른 걸로 알려졌고 평교사 가운데 아부나 하는 충성파만 곁에 두고 소신이 있는 비 충성파는 전근을 보내 버리는 등 겉과 속이 무척 다른 사람이었다. 그 후 그는 정치를 하려고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 일을 벌였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빚잔치만 벌인 채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오염된 세상에서 간혹씩 발생하는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충격적인 일들은 많은 이들을 경악케 하기도 한다. 한때 서울의 모 중학교 체육교사 하나는 노름빚을 갚기 위해 제자 하나를 유괴하여 그 집에 전화해 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결국 살인을 저지른 후 검거되어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성공회와 천주교 신부 하나는 SNS에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폭파되길 기도한다"는 글을 올린 다음 각각 파문 및 자격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똑같은 일도 교육자나 성직자가 개입될 경우엔 충격이 훨씬 커지게 된다.


갈수록 물질화되고 목적을 위해 어지간한 수단은 정당화되기도 하는 현재와 같이 오염된 세상에서 남을 위해 희생하거나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언행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나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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