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산행처럼 한 봉우리 한 봉우리를 넘으며 결국 마지막 목적지에 이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10여 년 전 혼자 배낭을 메고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밤차로 구례역에 내려 버스로 성삼제에 도착해 노고단까지 가서 아침을 먹고는 하루 종일 걸어 첫날 세석대피소까지 가서 여장을 풀 때까지 반야봉, 토끼봉, 형제봉 등 많은 봉우리를 넘었다. 한 봉우리씩 넘을 때마다 땀이 쏟아져 잠시 앉아서 땀을 식히곤 하였다. 이런 식으로 해서 천왕봉까지 갔다.
인생에도 고비가 있는데 산행할 때 만나는 봉우리가 마치 그 고비로 느껴진다. 또한 팔자 좋게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험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전자는 봉우리가 많지 않고 평탄한 코스인 반면 후자는 종착점까지 높고 험한 봉우리가 많은 경우일 것이다. 또한 산행을 할 때 애초에 평탄한 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고 일부러 험한 코스를 잡을 수도 있는데 이는 산행을 하는 사람의 기질이나 스타일에 따라 다른 것처럼 인생도 얼마나 도전적인지 여부에 따라 삶의 여정이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험한 코스를 갈 경우 미리 체력 보강 등 준비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고 의욕만 앞세울 경우 몸에 이상이 와서 중도에 산행을 접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삶의 경우에도 감당하지 못할 목표를 세워 강행군하려 할 경우 일을 크게 그르치게 된다.
나의 삶을 되돌아볼 때 산행 때의 봉우리에 해당하는 고비라면 대학입시, 군입대, 결혼, 취업과 퇴직 등이 떠오른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3 때를 생각하면 아직 갑갑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늘 반복되는 학습과 시험 그리고 압박감으로 하루하루가 편할 날이 없었다. 특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덥고 힘 빠지던 여름방학 때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던 사람과 스트레스를 참지 못해 딴짓을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다음 해 봄엔 극명히 갈렸다. 전자는 대학 캠퍼스에 후자는 입시 학원에 있었고 또한 전자는 입시 압박에서 벗어나 이젠 미팅과 축제를 경험하며 삶과 철학을 논하는 반면 후자는 철장과 같은 입시학원에서 또 한 번 불안에 떨며 힘들게 지내는 것이다.
군입대, 취업, 결혼, 은퇴의 경우도 삶에서 나름 중요한 봉우리일 수 있는데 각각의 봉우리를 오르는 과정도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남보다 앞서서 빨리 가더라도 중간에 예상치 못한 일로 삶이 꼬이는 경우가 그러하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석사과정도 마친 후 국내 최고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잘 나갔는데 중간에 회사의 대표가 감독원 감사에 적발되어 권고사직되자 그 불똥이 튀어 그도 함께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 후 그 사람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이상 산행과 우리의 삶을 견주어 볼 때 우선 각 고비를 인내와 지혜로 잘 넘기는 사람이 후회 없는 삶의 주인공이 되리라 보인다. 하지만 산행의 과정에서 잘 나가다가 예기치 않은 일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고 산행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샴페인을 터뜨리는 일은 더욱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