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자기 PR'이란 말이 나온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누구나 조금은 잘난 체 해도 크게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만일 내실이 결여될 경우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할 수 있다. 속이 꽉 차있으면 굳이 나서서 떠들어대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서 자신을 찾게 되며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내실이 외화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내실을 앞세우는 입장이라면 어떤 일의 성과를 평가할 때에도 겉으로 드러난 결과보다 그 결과로 이어진 과정에 나름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예를 들면 스포츠의 구기종목은 승패와 스코어가 나오지만 과정을 보면 골 넣은 사람 못지않게 수비를 잘했거나 골에 도움을 준 사람도 기여도가 못지않음을 알 수 있다. 유명 야구해설가 한 사람은 야구의 기록과 팀 공헌도에 관한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누상에 주자가 있을 때 타자가 안타를 못 치면 1타수 무안타이지만 만일 주자가 진루해 점수가 난다면 진루타를 쳐 득점에 기여한 공이 있으니 구단에서도 타율 외에 팀 기여도를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참 전 본 야구경기에서 내가 응원했던 팀은 패색이 짙었지만 극적인 홈런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에서 물론 홈런을 쳤던 선수는 최고의 영광을 안았지만 바로 앞 타석 타자도 그 못지않은 기여를 하였다. 그는 9회 말 투아웃에서 계속 파울볼을 치며 투수를 괴롭혔고 결국 사사구를 얻어 걸어 나가게 된 것이다. 그 투수는 호투를 했지만 계속된 파울볼로 집중력이 떨어져 다 잡아놓은 경기에서 급기야 역전 홈런을 허용한 것이었다. 만일 앞 타석의 타자가 투수를 괴롭히지 못했다면 다음 타석에서 홈런이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고 만일 아웃되었다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과거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금메달을 땄다. 그 경기의 국민적 영웅은 황영조였지만 숨은 공로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황영조가 스퍼트를 하기 전까지 은메달을 땄던 일본의 모리시타와 계속 사투를 벌여준 김완기였다. 만일 황영조가 처음부터 모리시타와 경쟁을 벌였다면 아마도 훨씬 어려운 레이스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삶이나 스포츠에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결과 이면에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들이 마치 칡넝쿨처럼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삶은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