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소설 '무명'을 보면 일제강점기하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 몇 명이 한방에서 지내며 일어나는 갖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죄수중 하나는 기회주의자로 간수가 바뀔 때마다 고향을 묻고는 자기도 동향이라며 그쪽 사투리까지 완벽히 구사하면서 반찬 하나라도 더 받아 챙겼다. 이렇듯 사람이 사는 곳에는 별 얄궂은 인간들도 있나 보다.
내가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얄궂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객지인 서울에서 처음 하숙을 할 때 우연히 같은 방을 잠시 썼던 한 사람은 32세의 노총각이었는데 하는 일도 불분명했다. 처음 와서 옆방의 동년배들과 인사를 하며 식사를 할 때 마치 선거유세하듯 했던 말이 "나는 학교 다닐 때도 늘 주장이 강했고 선생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 않았어요"라고 했다. 옆방의 한 사람은 철학 박사과정에 있던 강사 안씨와 직장인 임씨였는데 한 번은 그가 임씨 손금을 봐준다며 "10대 때 한번 죽을 뻔 한 적 있었지요."라고 하니 임씨는 사실이라 했다. 그러자 안씨는 "도사가 따로 없네"라고 했다. 임씨는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주인에게 사람 없을 때 그가 자기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까지 했다. 그런 사람은 도난 사고를 낼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그도 임씨가 못마땅한지 "안형은 군생활 어디서 했소?" 라 묻고 임씨가 표정이 어두워지자 "임형은 방위병 출신이네"라며 심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보름 정도 지나자 주인은 그 사람에게 나가라고 했다. 주인 말로는 하숙비를 보름치 내고 들어와서는 치약도 내 걸로 쓰며 지낸다고 했다.
하숙집이란 곳은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가 모여 살다 보니 도난의 위험이 상존한다. 직장생활 초년도에 신촌 하숙집에 방을 하나 얻었는데 직장인이나 학생이면 몰라도 정체가 불확실한 놈팽이 같은 인간들도 섞여 있었다. 그중 넉살이 좋던 한 인간은 방마다 돌아다니며 TV를 보곤 했다. 한 번은 내가 마루에 있는데 내 방에 TV 좀 보겠다며 들어갔다. 나는 귀찮기도 해서 내 소형 TV를 가져가서 보라고 했다. 그 후 카드 사고가 터졌다. 지갑에 넣어둔 운전면허증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던 차에 내가 카드로 돈을 인출하려 하자 지급정지 신호가 떴다. 누군가 내 카드로 주민번호 네 자리를 비밀번호로 입력해 현금서비스를 몽땅 받아내고 지급정지 카드를 지갑에 넣어둔 것이었다. 같은 종류의 카드가 지갑에 꽂혀있으니 별생각 없이 지냈는데 그동안 내 돈을 모두 빼내어버린 것이다.
그밖에 속과 겉이 다른 인간들도 있다. 내 앞에 와서는 웃으며 내 칭찬도 하고 필요할 때마다 부탁을 하며 잇속을 채우던 한 인간이 있었는데 그는 주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치며 자기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그 자는 남들 앞에서 내 욕이란 욕은 다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성당에 다녔던 그 인간이 '여호와증인'사람들에게 도움을 몇 번 받더니 나를 그들 모임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 후 나앞에서 다른 사람이 나의 허물을 말하더라는 말을 하길래 그 사람에게 "당신도 남들에게 내 얘기 많이 하고 다니지 않았느냐?"라고 하자 움찔하며 말을 잇지 못한 적이 있다. 그 후 시간이 한참 지나 어찌 내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연락을 하며 큰돈 벌게 해 주겠다며 녹음테이프를 건네줬는데 '암웨이'에 관한 것이었다. 자기 필요할 때엔 서슴없이 찾아와 자기 잇속을 채우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토록 세상에는 얄궂은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도 지금껏 살며 환갑을 앞둔 나이에 기쁜 일들은 쉽게 잊혀버리지만 불쾌한 일들은 오래 남아 한 번씩 불쑥 떠오르며 마음을 괴롭히곤 한다. 우리 자녀들도 어딜 가서 사소한 피해를 볼 일이 없길 바랄 따름이다.
좋은 생각 좋은 사람(3) '별별 인간이 사는 세상'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