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객지 생활의 체험

by 최봉기

태어나 10대를 보낸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가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 갔다가 돌아와 군 복무를 하고 결혼할 때까지 10여 년간 객지에서 나름 힘들고 고적한 생활을 했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땐 젊음의 혈기 하나로 낯선 환경에서 지냈다. 그때는 삶 자체를 잘 모를 때라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만 사는지 알았다. 또한 낭만과 순수함 그리고 지식의 열정 속에서 살았던 때였다.


객지인 서울에 가서는 학교 앞에 2인 1실로 된 하숙방을 얻어 생활하였다. 1982년 당시 월 하숙비가 11만 원이었다. 그때엔 하숙집과 학교만 오가며 첫 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자 하숙집 여주인이 다음 학기에도 자기 집에서 지낼 거면 방학 때 방값 3만원을 주고 내려가라고 하였다. 생각도 않던 일이라 당혹스러워 일단 짐을 다른 집으로 옮겨놓고 고향에 내려갔다. 주인은 순순히 방값을 받아낼 수 있을 걸로 생각했는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자 불쾌해하며 마루에 의자를 놓고 앉아 못마땅한 눈으로 짐 옮기는 걸 째려보았다. 그 뒤 한 선배에게 주인이 방값을 요구했단 얘기를 하자 "별꼴 다 보네. 누굴 촌놈인 줄 아나?" 하고 노발대발하였다. 모르긴 해도 하숙을 치는 사람들끼리 학교 주변에 사는 하숙생들에게 방학 동안 방값을 뜯어내기로 말을 맞춘 것 같았다.


대학 때부터 만났던 사람들은 저마다 나의 삶에 크게든 작게든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내가 막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정신적으로 꽤 영향을 준 사람이라면 첫 하숙집 옆방의 30대 초반 철학과 강사 안 선생인데 철학과 박사과정을 하며 강사생활을 했다. 그는 같이 지내며 철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주었는데 철학은 "기존 질서에 언제라도 도전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란 말을 했다. "그럼 철학하는 사람은 데모를 많이하겠네요?" 라고 묻자 "철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데모를 하지 않지"라고 했다. 그 후 그는 청주의 국립대 철학과 교수로 갔고 내 나이 서른 때 청주를 들러 그의 연구실에서 세상 얘길 나누기도 했다.


안 교수와 함께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전역 후 20대 후반 늦게 대학에 입학한 이씨성의 형벌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 전남 광주의 명문고를 다니다 학내 시위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고교 동기들이 대학을 졸업할 시기인 그때 늦게 1학년으로 입학했는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족 때문인지 공부에 몰두하지 못하고 겉도는 생활을 하다 2학년 말에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머리에 든 지식도 많았고 언변도 뛰어났으며 타고난 유머 감각에 스포츠와 중국문학 등 다양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옆에서 보기엔 재주가 아까워 보이곤 했다. 20여 년 전 어렵게 통화를 했는데 사업을 하며 돈을 많이 날렸다고 했으며 광량만 제철 사업에 뛰어든다고만 했고 그 후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는 대학교 4학년 때 양옥집 2층의 하숙집으로 갔다. 주인은 중년 여성이고 재수생 아들이 있었다. 그 집에서 몇 달 생활했던 친구 얘기로는 한 번씩 아저씨가 들를 때마다 갈비를 한 묶음씩 가져오는데 먹는 것과 방 등 제반 여건이 꽤 좋다고 했다. 나는 그 집으로 이사를 가서 마지막 학기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몇 달은 지낼 만 하더니 갈수록 반찬 질이 떨어졌고 날이 추워지는데 난방에 문제가 있어 춥기만 했다. 하지만 주인이 지내는 방은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난로도 하나 따로 들여놓아 따뜻하기만 했다. 하숙생들은 불만을 직접 주인에게 말하지 못한 채 끙끙 앓으며 고민이 커졌다. 식사시간 식탁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짓는 하숙생들에게 주인은 오히려 당당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날이 추워 시장을 못 가면 있는 걸로 먹을 수도 있는 거지 다들 불쾌한 표정을 하는데 나도 기분 나쁘니 잘해주는 집 있으면 옮기든지"라고 했다. 결국 나를 포함한 몇몇은 다른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옮기는 날 주인은 자기 처지를 진솔하게 밝혔다. 사실 자기는 둘째 부인이고 남편은 세집 살림을 한다는 것이었다. 반찬 질이 갈수록 떨어져 우리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할 때 그 주인은 일부러 우리에게 나쁜 반찬으로 대응을 했던 것 같다. 자기는 본부인도 아닌 처지라 남들 앞에 떳떳지도 못한데 하숙생들까지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나오니 앙심을 품고 보복을 했다고 생각된다.


20대 때 객지 생활의 경험은 기쁘고 정감있기보다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집을 떠나 객지에 있을 때에는 날이 추워질 때 그 고적감은 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을 놓고 보면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지 않고 또한 좋은 사람만 있지 않다는 걸 경험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젠 내 자녀들이 그러한 걸 느낄 시기가 되어버렸다. 집에서 편하게만 지내기보다 한 번쯤은 세상의 찬바람도 느껴보는 게 삶에는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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