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과 세모가 다가오는데 과거엔 이맘때 캐럴송과 구세군 자선냄비옆 종소리가 도심가에 울려 퍼지며 한해를 되돌아보게 했건만 저작권 문제로 캐럴송 듣기도 쉽지 않고 왠지 썰렁해지는 느낌이다. 어느 해 연말에는 구세군 냄비에 노신사 한분이 거액이 든 봉투에 "좋은 데 잘 써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기사와 함께 한 프로야구 선수가 어려운 마을에 쌀을 직접 배달해주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올해도 유사한 자선 관련 이벤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일이 간혹 일어나는 걸 보면 세상이 삭막하고 메말라가지만 온정이 아직 살아있음을 느낀다. 쌀쌀한 날씨로 몸이 오싹해질수록 온정이 전하는 전율은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다.
세상에 살면서 사람의 정이 그리운 때가 있다. 하는 일이 잘 되고 주머니 사정이 좋을 땐 스스로 에너지가 충만해 누군가의 위로나 격려가 별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반대로 하는 일이 잘 안 될 때는 마음이 괴롭고 쓸쓸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무척 그리운 법이다. 시험에 낙방했거나 사랑 혹은 사업에 실패했을 때 "힘내!" 혹은 "잘 될 거야!"라는 격려의 말을 들으면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실연이나 시험 낙방도 경험해 봤는데 그럴 때 누구에게 평소와 달리 과음으로 큰 민폐를 끼친 적도 있지만 나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나를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껴안아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뿐 아니라 늦게 군입대하여 고적한 생활을 할 때 면회를 와서 술 한잔 따라줬던 친구를 또한 잊을 수 없다.
인간들 간의 변치 않는 마음과 정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은 현재 하는 일이 잘 된다 해도 계속 그러리란 보장은 없고 혹 어려워질 때 온정을 전한 이에게서 도움을 받는 거지 "나 몰라라" 한 이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법이다. 사실 어려움을 당한 친구가 도움을 청할 때 선뜻 도와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한 때 친한 친구가 어려울 때 나를 찾아왔지만 처음에 좀 도와주다가 결국 외면해 버린 적도 있다. 도와주는 사람 입장에서 과연 먼 훗날 그만한 걸 돌려받기 위해 도움에 응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싶다.
고인이 된 야구 해설가 한 분은 한 친구에 관한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한 적이 있다. 자신과 막역했던 친구 하나는 자기를 무척 좋아해 자신이 대표인 회사를 자기 이름을 따서 '**주식회사'로 짓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자기에게 돈을 꾸어달라 했고 마침 곗돈을 탔던 때라 선뜻 빌려 주었는데 곧 그 회사가 부도가 났다. 그러자 그는 그 회사로 달려가 "*세끼! 돈 갚아라!"하고 난리를 쳤고 그 후 그 친구는 어렵게 지내다 가족이 'KAL기 폭발'로 사망하며 받은 보상금으로 빚을 갚으며 "나는 네게 빌린 돈은 최우선해서 갚으려 했는데 내가 쌀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 최소한 네가 내 친구라면 쌀이라도 가져와 전해줘야 했던 것 아니냐?"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도 없는 나라로 이민 가버렸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 죄스런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지고 해가 바뀌니 한 해를 돌아보며 아쉬움과 함께 알고 지내온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온정이 메말라 버린다면 세상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어떨 땐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도 뒤통수를 맞는 일도 있긴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마음의 문을 닫고 원성을 사는 것보단 그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