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평등하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신분간 차별을 제도적으로 철폐하였다. 미국에서도 1862년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조선도 1894년 갑오개혁 때 노비를 해방하였다. 노예 해방 이후에도 미국에는 흑백 간 갈등이 심하여 한때는 백인들이 가는 식당에는 흑인이 갈 수 없었다. 흑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본래 '케시어스 클레이'었다.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영웅이 되어 백인들이 가는 식당에 갔지만 쫓겨났다. 그때 백인들이 지어준 이름을 개명하고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그 후 앨라배마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 양보를 안 했다고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는데 흑인들은 이에 버스 승차를 거부하며 대대적으로 저항을 했고 그 사건은 법정으로 가서 결국 위헌으로 판결 났다.
위에서 언급된 인간의 차별 관련 내용은 현재의 시각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자리 양보 안 했다고 경찰이 체포한 걸 보면 당시 흑인은 노예는 아니었을지라도 준노예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만일 당시 흑인 여자가 성적인 희롱 혹은 추행을 당했다고 해도 법적인 보호를 받기는 어려웠다는 생각도 난다.
흑백 간 갈등 외에 세계적으로 남녀 성별에 대한 차별과 특히 국내에서는 지역과 관련한 차별이 있었다. 우선 조선시대에 여성들은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하고 집에만 있다 출가해 시집살이를 하며 가사와 육아, 그것도 다산으로 인해 혹독한 생활을 했다. 현모양처의 상징인 율곡 이이의 모친 '신사임당'은 사실 전통적 여성이라기보단 당시로선 신여성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지체 높은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쨍쨍한 집안 대신 허름한 집안 며느리가 되어 마치 현역 군복무 대신 보충역이나 군 면제에 해당하는 결혼생활을 택함으로써 당시 지독한 시집살이와는 현격하게 차별된, 시와 그림까지 가까이할 수 있는 특혜를 마음껏 누렸던 것이었다.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도 오랫동안 사회적인 이슈 거리가 되어왔다. 차별받던 지역 출신으로 갖은 고생을 하다 대통령이 되었던 정치인은 한때 "**도 사람들은 TV드라마에서도 건달 역할만 도맡아서 하고 있다"라고 역정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드라마의 건달들은 다른 지역 말씨로 한순간 물갈이 되었다.
기타 나이나 결혼 혹은 병역 유무 등과 관련한 차별도 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손윗사람들로부터 어린아이 취급을 딩하기도 한다. 게다가 미혼이거나 군미필 혹은 면제자일 경우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은근히 아래로 내려다본다. 나는 20대 때 그러한 차별을 당해 본 적이 있다. 사실 인간들이 모인 곳, 특히 경쟁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 돕고 화합하기보단 시기하고 모함하는 일이 더 많다. 특히 상대에게서 병역미필과 같은 만만한 구석이 보일 경우 그걸 트집 잡아 유세를 부리는 속물들이 꽤 많다. 내가 군복무를 연기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 군복무를 마쳤던 일부 사람들은 군 미필자였던 나에게 간혹 자신들이 군복무를 하며 가졌던 온갖 피해의식이나 콤플렉스를 덮어씌워 버리려 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자기들은 *같은 군대를 갔다 왔으니 나 같은 사람은 군에 가서 엿이라도 한번 먹어보라는 식이었다. 사실 나는 늦게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며 꽤 고생도 했지만 나 자신이 편법으로 군복무를 면제받은 사람과는 다른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군대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부정적이기보다는 나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세상에 퍼져있는 온갖 종류의 차별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평가하거나 심판할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 특히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경박하게 처신할 경우엔 가해자였던 자신이 졸지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