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모습이 무언지를 한번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을 때, 사랑했던 한 이성에게 실연을 당할 때, 실직을 당할 때 등의 상황이 떠오른다. 대학 때의 한 강사는 자신이 대학시절 백지를 낸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막상 자신이 백지를 받으니 아찔했다고 했다. 나의 경우 고2 때 수학시험을 볼 때 빵점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충격을 받고 교무실에 올라가서는 담임 앞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 후 졸업을 하고 대학생이 되어 그 얘기를 당시 같은 반에 있던 친구를 통해 들었는데 그 담임은 그 얘기를 인사를 하러 왔던 친구에게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비참함을 한 번이 아닌 두 번씩 느끼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정도 일은 추억거리가 되어버렸다. 만일 내가 대표적으로 싫어했던 과목 수학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면 흘릴 눈물이라도 있었겠는가 싶어 진다.
사실 이런저런 비참함이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비참한 건 배고픔 속에서 허덕일 때가 아닐까 싶다. 우연히 시청하게 된 과거 드라마게임의 '흘러간 노래'란 드라마에서는 인간이 생존의 어려움에 처할 때 어떻게까지 되는가 하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느 젊은 연인이 결혼 전 가족끼리 상견례를 하는데 남자는 대기업의 대리로 집안 형편은 썩 좋지 못하며 여자는 중견기업 오우너의 딸인데 여자의 모친은 남자의 누이를 보자마자 안색이 바뀌며 집에 와서 딸에게 혼담은 없던 걸로 하자고 한다.
사실인즉 남자의 누이는 독립유공자 부친이 실어증으로 집에서 놀고 남동생은 학생이라 가족이 곤경에 처하자 집에는 부산의 일본인 회사에서 일한다고 해놓고 한 달에 한 번씩 집을 들렀는데 사실은 요정에서 호스티스 생활을 했고 그때 남동생 애인의 부친은 그 요정 단골로 와서 그녀와 가까워졌고 누이는 그의 情婦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그 부친의 배우자는 그 사실을 알고는 누이에게 와 현금 뭉치를 주면서 외국에 가든지 멀리 사라져 달라고 하면서 자기 남편과 갈라놓았다. 누이는 그 사장에게 전화해서 자기는 혼담이 있는 집 누이라고 하고 만나자고 해서 자신을 보고 놀라는 사장에게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사실 내가 호스티스 생활을 했던 건 가족이 살기 위해 한 거였고 몸까지 팔아 동생 공부를 시켜 동생은 명문대를 나와 수석으로 일류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인데 사장님도 과거에 기생파티를 해서 돈을 버셨던 거 아니었나요?" 그러자 그 사장은 그 말에 크게 공감하며 집으로 가서 끝끝내 반대하는 배우자를 설득한다. 결혼 당사자인 남동생에게 누이는 자신의 더러운 과거를 숨겼지만 동생은 늦은 시간 누이가 운영하는 칼국수집에 술이 취해 들러 누이와 함께 술을 마시며 누이의 과거를 자신도 알고 있었다고 실토하며 "누나! 정말 고마워. 누나는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만큼 훌륭했던 사람이야!"라고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누이도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은 손을 꼭 잡는다.
대한민국은 과거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시절 밥을 먹기 위해 뭐든 가리지 않고 했다. 따지고 보면 기지촌 양공주나 술집 호스티스도 가난이 잉태했던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교양과 멋 그리고 지식이란 것도 먹고 살만 할 때 필요한 것이지 배고플 땐 별 의미없는 것인지 모른다. 명화 '애수 (Waterloo Bridge)'에서 2차 대전 때 약혼한 남자(로버트 테일러분)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거리의 여자로 전락했다 역에서 우연히 살아 돌아온 그 남자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워털루 다리 위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몸을 던진 여자 (비비안리분)이 했던 대사가 기억난다. "나는 배가 고팠단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