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다 된 지금은 여자를 보는 눈이 20대 때와는 차이가 있지만 과거엔 예쁜 여자만 눈에 들어왔지 외모가 별로인 여자에겐 관심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경험했던 경우만으로 모든 여자를 일반화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여자는 남자보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훨씬 강한 존재인 것 같다. 그건 여자들이 오랫동안 남자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렇게 고착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던 조선에서도 여성은 혼자 먹고살기가 어려웠지만 예수님이 살았던 시절 이스라엘에서 여성은 법적으로 직업을 가지지 못했기에 남편이 세상을 떠날 경우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거지나 창녀 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현실적인 속성 때문에 여자는 남자들을 자신의 주변에 오게 하는지 모른다. 미인일 경우 저절로 남자들이 주변에 모이지만 미인이 아닐 경우에도 여자는 대개 자신이 가진 매력을 최대한 살려 남자들이 자기 주변에 오게 한다. 그다음은 그중 자신의 현실적인 삶을 책임져줄 만한 사람을 고르고 그를 결혼 상대자로 삼아 교제도 하며 마음도 준다. 그러다 남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떤 경우에는 결혼 전이라도 과감히 몸을 던진다. 만일 그랬는데도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가려하는 경우엔 '혼빙간(혼인빙자간음)'이란 죄목을 적용시키기도 한다.
반면 남자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절박감이 큰 여자에 비해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남자 형제들만 있는 집에서 커온 사람은 여자의 심리를 잘 알지 못해 마음에 드는 상대 앞에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경우도 있다. 남자는 20대 초반이라면 몰라도 나이가 들면서는 사회적으로 자리가 잡히지 않으면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여자가 생각하는 멋있는 남자와 남자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자의 눈에 인간적으로 호탕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경제적으로 편안하게 살게 해 줄 수 있는 남자라면 멋있는 남자이다. 반면 그런 남자는 같은 남자에겐 졸장부일 수도 있다.
'여성적'이란 말에는 '포근함'과 '섬세함'이 있고 그 기저에는 '모성애'가 자리한다. 모성애는 절대적인 사랑으로 '아가페'라고 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어떠한 사랑보다 조건 없는 숭고한 사랑이다. 면회객의 발걸음이 한 사람씩 끊겨 고독 속에서 형집행 날짜만 기다리는 사형수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어머니 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듯이 여성은 원초적으로 이중성이 있고 게다가 속된 말로 "호박씨 깐다"는 말처럼 원초적으로 두 겹의 표정을 지으며 산다. 다시 말해 좋아도 좋다고 잘 내색을 하지 않고, 싫어도 싫은 표정을 짓지는 않는다. 이는 현실적으로 조금이나마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특유의 심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밥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배가 불러 보이면 먹을 걸 더 이상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