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며 하루 종일 꽤 많은 말을 한다. 그중에 꼭 필요한 말은 어느 정도일까?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어찌 보면 절반 정도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인지 모른다. 흔히 말해 수다를 뜬다고 하는데 그 수다 뜨는 말은 대개 꼭 필요한 말이 아닌 "누가~ 했다더라."라는 식의 가십성 발언이다. 그러한 말은 남에 대한 시기심, 부러움, 자신에 대한 불만이나 넋두리가 묻어 있어 말을 한 후에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데 계속 그러한 언어의 공해 속에서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서가 거칠어지고 삶 속 공기가 탁해만 진다.
말의 필요성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에 있는 것이란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배가 고플 땐 배고프다고 말을 해야 밥을 얻어라도 먹지 가만있으면 누구도 배고픔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 그런 말의 원초적인 기능을 제외한다면 굳이 말을 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 말이 삶을 유익하게 해주는 경우라면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기쁜 일이 생긴 사람을 축하해 줄 때가 아닌가 싶다. 이렇듯 좋은 의미로 건넨 말은 다음에 다시 좋은 의미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좋은 의미의 말이 씨앗을 뿌릴 경우 우리의 삶은 무척 풍요로워지리라 보인다. 반면 아무 말이나 별생각 없이 내뱉거나 근거도 없이 누군가를 비방한다면 그러한 언행을 일삼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대상자를 포함해 사회 전체가 뿌연 먼지 속에 덮여 정신적인 폐병을 앓게 되리라 생각된다.
1982년 가수 '이태원'이 부른 '솔개'란 노래는 의인화한 솔개의 눈으로 관조하는 인간세상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나는 솔개처럼
소리 없이 날아가는 하늘 속에
마음은 가득 차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다가와
헤아릴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도 우리가 됐소
바로 그때 나를 비웃고
날아가버린 나의 솔개여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아
애드벌룬과 같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의미 있는 하루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 속에
나도 움직이려나
머리 들어 하늘을 보면
아득한 솔개의 얼굴
수많은 농담과 진실 속에
멀어져 간 나의 솔개여
멀어져 간 나의 솔개여
선우휘의 소설 '묵시'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두 명의 지식인이 친일 압박을 받는데 그중 하나는 이미 친일인사가 되고 또 하나는 그런 와중에 대중이 모인 곳에서 친일 강연을 강요받게 된다. 강연이 시작되고 그는 강연도중 갑자기 목에 이상이 온 듯 말을 잇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며 쓰러지고 강연은 중단된다. 그 후 그는 벙어리의 삶을 사는데 이를 의심한 일본 형사가 그의 집에 찾아와 강아지를 안고 있는 그의 뒤편에서 강아지에게 총을 쏘아 강아지를 죽이지만 그는 미동도 않은 채 태연히 있자 형사는 별말 없이 사라지고 그는 막아둔 천을 귀에서 빼낸다. 그 후에도 그는 진짜 벙어리처럼 사는데 임종이 되자 아들에게 그간 닫아온 입을 열며 마지막 심경을 토로한다. 말을 하지 않고 살아온 침묵의 삶이 이렇게 고요하고 평안할 수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