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장수가 福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災殃이라고도 한다. 중학교 때 어떤 어른이 예순을 넘어 별세한 분을 보고 "살만큼 사셨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더 오래 살고 싶다고도 하는데 살만큼 살았다는 건 과연 뭘 의미하는 걸까? 환갑을 두어 달 앞둔 지금은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에게 지금 나이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는다면 10대와 20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때는 세상을 잘 모를 때였고 정신적으로 未成熟했던 때라 이런저런 일로 치이는 일이 많았다. 10대 때는 몇 살 위 불량배들이 돈 달라고 협박하거나 동급생 왈패들이 시비를 걸 때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겁만 먹었던 것 같다. 또한 사춘기 때에는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지만 입시 지옥 속 압박감과 불안감으로 이성교제란 건 해보지도 못한 채 호기심만으로 세월을 보내었는데 그것 또한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20대 때는 대학생이 되면서 그동안 入試란 철문으로 굳게 닫힌 감옥을 박차고 존재와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삶은 유한하고 그 속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왜 사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지만 그 답은 간단하지 않다. 독서와 대화를 통해서 혹은 종교에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만 삶이란 늪에 한번 빠지면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허우적대며 迷宮속으로 빠져들기만 하는 것이다.
20대 때는 인생의 伴侶者를 찾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보지만 그것 또한 만만치만은 않다.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 혹은 연인 관계가 된 이성과 교제하는 이들도 보이지만 자신도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사귀어보려 나서면 병역문제가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이렇듯 10대와 20대는 삶의 고뇌와 번민 속에서 마음이 무겁고 짝 찾기 조차 힘들기에 마음 편할 날 없는 방황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닌가 싶다.
30대가 되면 취업도 하고 가정도 있어 몸과 마음이 조금은 안정된다. 이제는 가장으로서 자녀교육을 포함한 갖가지 가정사에도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펼쳐진다. 그러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는데 이때는 삶의 固着化로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간다. 또한 자신의 능력의 한계도 조금씩 알게 되고 그 와중에 삶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갖게 됨에 따라 자식 혹은 조카벌인 10대나 20대를 보면 해줄 얘깃거리도 많아진다.
환갑을 맞이할 때가 되면 삶 전체를 돌아봄에 과거 20대나 30대 때 왜 그리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젊은 시절 번민과 방황의 이유는 우선 삶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패기와 소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 보니 시행착오와 함께 주변과 좌충우돌하는 일이 많아진다. 반면 年輪이 쌓이면서 인생은 패기나 신념만으로 또한 삶의 성공도 능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남에게 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가 이제는 자기보다 나은 이들을 인정해 주는 여유를 가지게 되면 마음이 무척 편해지기도 한다. 또한 자기 것만 챙기지 않고 남에게 베풀 땐 남들도 그만한 답례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살만큼 살았다"는 말은 환갑 나이가 되면 그때까지 山戰水戰을 겪으며 어지간한 삶의 역정은 경험해 봤다는 걸로 풀이해도 될 것이다. 예순을 넘어 백세까지 혹은 그 이상까지 살다 보면 삶의 또 다른 妙味를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순까지 살았다면 삶 속에서 자신의 솜씨로 완성된 그럴듯한 작품 하나 정도는 완성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