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愚直하게 사는 사람과 靈惡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우직한 이들은 법과 원칙에 목을 맨다면 영악한 이들은 아예 기존 법과 원칙을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원칙 내지 모델을 자신의 손으로 만듦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세상의 판도를 크게 바꿔버리기도 한다.
愚直한 이들은 목표한 결과를 이루어 성공을 거두기보다 과정에 충실하는 스타일이라면 靈惡한 이들은 암만 과정에 충실하더라도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과정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보기도 한다. 달리 말하자면 愚直한 이들은 결과에 대한 집착이 적은 반면 靈惡한 이들은 결과를 향하는 집념이 남달리 저돌적이다.
세상에서 자신이 룰을 만드는 리더가 되기보다 룰을 만드는 누군가에 忠誠을 하는 고려말 최영과 같은 인물이 愚直하다면 상관인 최영으로부터 명나라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성계는 반대로 靈惡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출정에 나서지만 현실적 여건상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명령의 철회나 조정을 요청했건만 묵살되자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역적이 되어 처형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새로운 역사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꾼 이들 가운데 또 하나가 박정희이다. 그는 4.19로 집권한 정치 지도자들로는 나라가 제대로 통치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쿠데타를 감행한다. 그 또한 만일 실패한다면 역적으로 처형을 당함에도 당시의 법과 원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과감하고도 저돌적인 해결책을 강구한 나머지 스스로 한나라의 통치자가 된 것이다.
이렇듯 과거부터 해오던 방식이나 원칙만으로는 도무지 답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새로운 판을 짜는 뭔가 획기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현대그룹의 창립자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이란 농촌에서 살다가 10대에 가출을 감행하였다. 만일 그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농사일에만 전념했다면 평범한 농사꾼으로 살았겠지만 靈惡하게도 가출을 결행함으로써 결국 자신과 집안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바꿔놓았다.
삼성그룹의 경우에도 창립자 이병철 회장이 구축해 놓은 섬유나 의복 혹은 설탕과 같은 경공업 위주의 틀에만 안주했다면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 삼성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병철의 삼남 이건희는 안정을 추구하던 당시 경영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래의 먹거리로 기존 사업과 아무 연관성도 없는 '반도체'라는 새로운 분야에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던 靈惡한 경영자였다.
인간은 대개 익숙해진 틀속에서 안정을 선호하지만 때로는 이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새로운 질서에 도전하는 靈惡한 결단이 요구된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 속에는 이러한 기회가 올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올인에 성공한 靈惡했던 소수의 영웅과 새로운 질서를 스스로 창조해야 할 때 愚直하게 과거의 틀속에 안주하다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수가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