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익숙한지 아닌지에 따라 좋거나 나쁘게 혹은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오류를 가져올지 모른다. 한때 '미니스커트'란 파격적인 옷이 국내에 들어와 선을 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보수적이었을 뿐 아니라 민주화되지 않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였기에 신선하거나 개성적이라기보다 관능적이고도 비정상적인 걸로 받아들여졌다.
여자가 大路에서 속옷이 살짝 가려진 복장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은 주변 남성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였지만 사회적으로 그다지 환영할 일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특히 육교나 계단을 올라갈 때에는 난처해지는데도 굳이 그런 옷을 입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기존의 관념을 허무는 측면에서는 기여한 측면도 있었는지 모른다.
처음엔 누군가 파격적인 옷차림을 하는 걸 보고 별생각 없이 따라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며 남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미모가 아닐 경우 파격적인 복장을 통해서라도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 하는 동기도 있었으리라 보인다.
이런 식의 破格적인 옷차림이란 것도 그 역사를 들춰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재는 남자들은 바지를 입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때는 남자들은 치마를 입고 다녔으며 그것도 특히 군인들은 활동하기 편리한 짧은 치마를 입었다는 것이다. 반면 당시에 여자들은 긴 치마를 입었던 모양인데 지금과 달리 짧은 치마는 몸매 과시용이라기보다 실용적인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복장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생겨나 전혀 다른 반응을 가져오는 걸 보면 인간의 관념이란 것도 매우 가변적인 듯 보인다. 인간은 대개 자기에게 유리한 걸 선호할 뿐 아니라 유리한대로 말하고 유리한대로 행동하는 매우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은 익숙하지 않은 걸 보면 외면하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폐쇄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새로운 걸 경험도 하고 그 속에서 현재의 것들을 바꿔나가지 않는다면 늘 고여있기만 한 물처럼 썩거나 제자리걸음만 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것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외부에서 들어와 처음에는 얄궂게 보이다가 어느새 정착되며 우리의 것처럼 되어버린다. '청바지'나 '선글라스'와 같은 것도 우리의 고유한 것이라 말하긴 어렵다. 처음엔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국내에 들어와 이제는 삶 속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며 한반도 남쪽은 많은 외국인들이 이주하고 있다. 동남아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별 호감을 주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이러한 현상은 수십 년 전 우리가 미국에 이민 가는 걸 큰 영광으로 생각하던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과거에 익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정착되며 우리의 삶을 좋게 변화시킬 수도 있다면 偏見의 색안경은 벗어던져야 하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