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워낙 급속하게 발전하기에 "어제가 옛날이고 그제가 원시시대"라는 농담도 있다. 그런 식의 농담을 요즈음 젊은이들은 '아제 개그'라고 부른다. 한때 최고의 직업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전문직도 이제 한 물 간지 오래고 과거에 끼니 해결조차 못하던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선수는 한번 뜨면 八字 고치는 세상이다. 이런 세태다 보니 전통적인 것은 골동품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이렇듯 관심은 온통 현재 혹은 다가올 일에 맞춰질 뿐이다. 하지만 환갑까지 살아온 나 같은 이에게 있어 미래 못지않게 소중한 건 과거이다. 과거지사가 단지 추억 속의 그림 같은 정감을 줘서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인간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 없을 경우 과거의 그릇된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溫故知新' 즉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말이 있다. 과거를 잘 모르거나 무시하면서 새것만 알려 할 경우 겉으로는 번지르해도 함량이 미달인 제품이 나오기 십상이다. 현재는 과거의 産物이고 미래는 또한 현재의 産物이다. 따라서 만일 과거를 별 의미 없다고 무시해 버린다면 문화적 사생아가 나올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해서 탄생한 미래가 어찌 온전할 수 있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신속함과 편리함 또한 '너나 잘해'로 대변되는 개인주의 풍조 속에서 그간 중시되어 오던 전통적인 가치가 埋沒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전통적인 가치를 쭉 펼쳐놓고 보면 조상들이 한없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우선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수명이 수십 년 짧긴 했지만 '孝道'라는 게 남아 있어 '노후준비'란 걸 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자식을 여럿 낳아 키우느라 고생은 했지만 노인이 되면 자식들로부터 생활비 정도는 받아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생해서 자식을 키우고 대출까지 얻어서 자식 결혼을 시키고 나서도 노후에 따로 모아둔 현금이 없으면 인간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살벌한 세상이다.
또한 그 시절에는 비록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일지라도 마치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고 도와주려는 마음, 즉 公同體意識이 있었다. 70년대 때 나의 기억 속에는 라디오에서 간혹 택시기사가 택시에 귀중한 물건을 두고 내린 사람을 애타게 찾는다든지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는 이에게 시장에서 반찬집을 하며 푼돈을 모은 할머니가 거액의 돈을 선뜻 내놓는다든지 하는 美談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그때보다는 잘 살지만 가족 친지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해도 가진 돈을 내놓는 일에는 무척 인색하다.
앞으로 세계를 선도할 우리 다음 세대들이 이렇듯 온전하지 못한 발전을 추구한다면 이는 어찌 보면 그들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윗세대인 우리의 책임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윗세대가 늘 옷장 속에 감춰둔 회초리를 우리도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해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