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눈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나름의 향기를 내뿜는다. 인간은 이러한 아름다운 꽃과 꽃내음 속에서 꽃이 가진 고유한 자태와 향기를 즐기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향기가 자극적인 꽃은 마치 열창을 하는 솔로 가수와도 같다면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꽃은 자신을 죽이면서 조화를 이끌어내는 베이스악기를 연상시킨다. 인간도 이러한 꽃처럼 삶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여성들은 화장을 해서 아름답게 보이려 할 뿐 아니라 향수까지 뿌리며 관심을 끈다.
향수는 코를 통해 느끼는 가공된 향기지만 홍어나 김치와 같이 숙성을 통해 만들어진 역겨운 냄새의 음식은 악취에도 불구하고 일반 음식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맛과 유산균을 통한 영양까지 제공한다. 인간도 향수와 같은 즉흥적인 아름다움과 달리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항구적인 '내면적인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는 건 어떨까?
'외면적인 아름다움'이란 겉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지만 자연 그대로라기보다는 가공의 과정을 거치는 일이 많다. 다시 말해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을 비롯해 최근에는 성형까지 이에 가세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자연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유행이란 것도 바뀌는 것이고 외모도 금방 시들해진다. 반면 '내면적인 아름다움'으로 눈을 돌리면 따로 손을 갖다 댈 일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속에는 깊은 인간의 향기가 숨 쉰다. 하지만 여기에는 시간과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 '의로움'과 '인간미' 그리고 '희생정신'과 같은 내면적 아름다움은 실천이 쉽지는 않지만 곧장 사라지는 향수와 달리 오래도록 변치 않는 기쁨을 갖게 해 줄 것이다.
인간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내적인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의로움'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냐 하면 그랬다가는 현실적으로 사람들과 불화가 생겨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 되려면 남다른 용기도 필요하다. 과거 독재정권하에서는 외압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이들도 많았는데 현재와 같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다들 가볍고 무관심하며 이기적이기만 하다. 지하철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전화를 하는 사람에게도 "조용히 합시다"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갈수록 세상이 무질서하고 잘못한 것도 반성하기는커녕 당당해하기까지 한다.
그다음은 '인간미'이다. 물질적인 가치를 강조할수록 인간 본연의 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를 인간이 가진 능력에 한정시키다 보면 장애인이나 노인 혹은 직업이 없는 소위 무능력자들은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그들이 가지는 소외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사회는 능력자의 사회이지 인간의 사회라 할 수 없다.
마지막이 '희생정신'이다. 세상에서 손해 보기를 원하는 이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면 일부러 손해 보는 이도 있어야 한다. 배울 만큼 배우고 벌어 놓은 돈도 있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를 위해 조금씩은 내놓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당장 내일 먹을 끼니가 해결되지 않아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앞으로 더 심해진다고 한다. 따라서 가진 재산의 일부는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하건만 그런 마음까지 사라진다면 세상은 가진 자만 행복을 누리는 곳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힘을 들이지 않고 즉흥적으로 코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들 대신 시간과 인내를 통해 숙성된 역겨운 냄새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추운 겨울 같은 세상에 훈풍이 불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