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이란 유행가 가사처럼 인간이 솔개처럼 말을 하지 않고 산다면 겉과 속이 다를 일도 없겠지만 생각 따로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걸 보고도 문제 삼지 않는 세상이 되고 있다. 모든 이들이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 일치한다면 세상은 호수처럼 잔잔할 것이다. 하지만 말과 다른 가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잔잔한 물가에 파도가 너울대기도 하고 때로는 거센 풍랑도 인다. 또 한편으로 만일 인간이 감정을 가감 없이 폭발해버리기만 해도 세상은 살벌해지기에 이럴 때 감정을 감추는 건 오히려 지혜롭다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지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생각대로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되 때로는 감정을 누그러뜨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묵묵히 창공을 날으는 솔개와 달리 늘 더불어 누군가와 말을 하며 지내는 인간들 가운데는 생각과 말 또는 행동이 늘 일치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속 다르고 겉 다른 이들도 있다. 대나무처럼 곧기만 하다면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않듯" 사회생활에서 다른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건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생활에서 때로는 뻥이나 선의의 거짓말을 통한 임기응변도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속과 겉이 다르지 않은 공명정대한 이들은 편법에 의존하는 속물들보다 올바르고 또한 믿음을 바탕으로 결국 성공하리라 보인다.
속 다르고 겉 다른 이들은 자기 합리화의 귀재들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고 늘 자신들이 유연하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자기들과 달리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이들을 칭찬하기보다 고지식하다거나 고집불통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이들의 수는 갈수록 많아지고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무엇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암만 과정이 좋아도 의미가 없다는 통념 때문이다. 하지만 과정상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결과가 암만 좋더라도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하는 용기 있는 이들도 있어야 하건만 그런 이들은 갈수록 보기가 힘들기만 하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누구나 민주화를 소망했지만 여차하면 어디 불려 가서 조사라도 받을지 몰라 대다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걸 말과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들에 대해 겉과 속이 다르다고까지 한다면 너무 가혹할지 모른다. 그 이전으로 돌아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을 부르짖으며 저항했던 이들은 한마디로 목숨을 내건 사람들이었다. 이런 이들은 남들이 상상도 하기 힘든 정도의 용기를 가진 이들이다. 이런 의로운 이들을 밀고했던 밀정들도 있었는데 이들 중에는 훗날 과거행적을 교묘히 세탁해 자신들을 독립유공자라고 내세우며 국립묘지에 안장되기도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 되는 이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춘향전에서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은 일부러 거지몰골을 하고 춘향이 갇혀있는 감옥을 찾아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고생을 하는 걸 보면서도 자신이 급제했다는 사실을 함구하기만 한다. 그 다음 날 어사로 출두해서도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수발을 들겠느냐고 한번 더 물어본다. 그럼에도 결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은 춘향이었고 그러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었기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춘향전은 심금을 울리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는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다 보니 한 입으로 두말을 할 경우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돈과 권력은 도깨비방망이와도 같이 원하는 걸 갖게 해주어서 인지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이 많아지고 그런 현상에 대해 경각심조차 갖지 않는 세상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이런 표리부동함을 정당화하는 전문가들이 바로 정치인들일지 모른다. 부디 그렇지 않은 올곧은 이들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또한 정책을 놓고 싸우는 곳이 국회가 되길 간절히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