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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학점과 인생 학점은 어떻게 다른가?

by 최봉기

대학시절 A학점을 받으면 기분이 무척 좋다. 전체 평점도 좋아 장학금까지 받으면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고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자기 최면 내지 자아도치에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도 사회의 축소판일지 모르지만 대학에서는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하면 A학점이란 성공적인 결과를 차지할 수 있지만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면 차원이 달라진다. 학교에서는 떠먹여 주는 밥을 먹고 소화만 시키면 되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스스로 농사를 지은 알곡으로 밥도 지어먹어야 하며 그 과정 속에서도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줄을 잇는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지을 때에는 벼를 심고 추수하는 것 외에도 비료와 농약을 뿌리는 일을 비롯해 잡초까지 뽑아줘야 한다. 그 밖에도 풍작을 하면 잔치만 벌일 게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른 흉작 대비도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수학능력과 성실성이 있으면 남을 앞설 수 있다. 따라서 사교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과묵하고 시선을 공부에만 집중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과묵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자의 길을 가는 게 맞을 것이다.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는 모든 일이 전후 좌우로 연관되어 있어 관련된 사람들과의 유기적인 의사소통이 요구되기에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따라서 술자리나 골프자리에도 빠지지 않아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에 별 흥미를 못 붙인 이들 가운데에는 사회생활에서도 여전히 무기력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진 이들이 있는 반면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학교와는 딴판이 되어 사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대개 학창 시절에 공부라는 한 길만 쫓는 이들과 달리 성격이 활달하고 주변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마치 자기 일처럼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다. 자신은 손해를 보더라도 친구나 지인들을 도와줄 경우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이들도 자연히 생기는 법이다.


사회생활은 대학생활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길지도 않은 대학시절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는 때지만 세상을 잘 몰라 중요한 판단도 부족한 경험과 미흡한 사고력으로 인해 남 얘기에 의존하거나 즉흥적으로 하다 그르치는 일이 생긴다. 또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도 많다. 공부에 모든 게 맞춰진 게 학교라면 사회란 자격증과 같은 전문분야의 지식과 함께 정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온갖 문제해결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능력은 강의나 교과서에서만 얻어지는 게 아니다. 문제해결의 힌트는 '삼국지'나 '토지' 혹은 '성서'와 같은 교과서 이외의 책을 비롯해 영화나 심지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인생바닥 이야기를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경영자 가운데 현대 정주영 회장과 같은 이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어릴 때 강원도 통천에서 상경해 쌀가게 점원, 공사장 인부, 자동차 정비업 운영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한 번은 자동차정비 공장에 불이 나서 알거지가 되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현대자동차라는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었다. 정주영은 우수한 인력들이 분석해서 올린 보고서는 참고만 할 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정주영은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자로서 경영학박사들을 고용하며 진두지휘하였다.


나도 이제 환갑 나이가 되니 학교에서 공부 좀 하고 명문대를 나왔다고 뽐내는 사람을 보면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그들의 몸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나 인간미보다 '이기심'과 '자기 과시'란 악취가 풍기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에서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을 보면 공감과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그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함께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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