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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가 정치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by 최봉기

판검사나 변호사를 했던 법조인들 가운데에는 정치인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정해진 법률로 피의자를 기소하거나 변론이나 판결을 하던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행정각료들을 앉혀 놓고 대정부질문을 하고 법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건 품격이 있어 보인다. 국회의원은 사회적 지위도 판검사나 변호사보다 높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법이란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존재하는 강제규범이다. 인간들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한쪽이 손해를 보게 될 때 대화를 통해 합의나 타협을 한다면 굳이 법적 소송이 발생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 간에 대화를 통한 정상적인 문제해결이 되기 어려워 고성만 오갈 때 나오는 말이 "법대로 합시다"이다. 다시 말해서 도덕이나 양심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되면 법적 절차를 밟게 된다. 법정에 가야 조정이 된다는 건 달리 말하면 인간들 간의 문제가 대화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인 만큼 서로 간 신뢰가 무너졌다는 걸 의미한다. 법이란 분야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생소하기에 법률전문가라는 이들이 '미필적 고의' 등과 같은 전문 법률용어를 동원하며 설명을 하면 일반인들은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 무슨 말인지 애써 경청하지만 표정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법이란 규범은 공식적인 구속력을 갖기에 누구나 '법'이라는 말만 나오면 혹 불이익을 당할까 오싹해진다. 하지만 이렇듯 완벽해 보이는 법이란 규범에는 맹점도 있다. 법이 있으면 이를 교묘하게 피하는 법망이란 게 존재하는 것이다. 변호사라는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법적인 허점을 찾는 데 있어 뛰어난 후각으로 법적인 돌파구를 찾는데 그러한 재능이 떨어지면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따라서 법을 다루던 법률 전문가들이 정치인이 될 경우 법을 통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보다 여차하면 교묘하게 법을 악용할 위험도 있다. 법은 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해 돈 없고 힘없는 약자들을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함에도 오히려 영향력이 있는 이들의 이권을 지켜주는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즈음같이 안팎으로 혼란한 시기에 정치인이 진정 해야 할 일은 이해관계의 충돌로 서로 싸우고 편이 갈릴 때 갈등을 중재하고 현명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빈부 간 갈등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간의 반목이 심화될 경우 어려운 이들에게는 참고 견디면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또한 형편이 조금 나은 이들에게는 힘든 이들을 위해 기꺼이 손해 볼 마음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공생의 관계가 될 때 안정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만만치 않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확고한 국가관과 진실성이며 전문적인 법률 지식보다 '우리'라는 공감대를 갖게 하는 철학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전통적으로 우수한 인재라면 이공계는 의대로 가고 문과는 법대나 상대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법학 전공자들은 고시에 도전하여 지금은 로스쿨체제로 바뀌었지만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통해 법조인이나 고위공무원이 되었다. 바꿔 말해서 법조계로의 진출은 곧 출세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 중에는 법 공부가 맞지 않아 방황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결국 휴학을 하거나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어찌 보면 법률 관련 분야는 두뇌가 뛰어나기보다 보통 정도의 두뇌를 가진 노력파들에게 더 어울릴지 모른다. 법을 적용하는 데 요구되는 소양은 창의력이나 비범함보다 상식적인 판단력이기 때문이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법조인이 내린 판결 중에는 비상식적인 판결도 많다는 지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법이란 건 얼마나 잘 만드는 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지키는가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을 제정하는 일을 하는 국회의원들은 법이 우스운지 일반인들보다 법을 어기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면책특권까지 있어 법적 제재를 받는 일도 적다. 이들은 명백한 범법 사실이 있더라도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하나같이 자신의 무죄를 내세우기 바쁘다. 또한 잡범들이 저지르는 죄를 범해놓고도 마치 정치보복을 당하는 것처럼 위장을 한다.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가들을 보는 시각은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현재 국회란 곳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들이다. 이들은 어려운 법률 용어를 써가며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위용을 마구 과시한다. 이들이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건 법지식이나 말주변보다는 진실감과 포용력 그리고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경륜과 철학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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