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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일이 이토록 대단한 이유는 뭘까?

by 최봉기

세상이 바쁘게만 돌아간다. 아침부터 밤까지 눈코 뜰 새가 없고 매일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 속에서 다들 자신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만 산다. 게다가 경쟁력을 잃게 되면 밥줄이 끊어질 수도 있기에 바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게 일반적이다. 반면 하는 일이 없다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일이다. "세상에 제일 바쁜 게 백수"란 말도 있다. 이는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하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생산적인 일'이 아닌 '소비적인 일'이다. 누구나 등하교나 출퇴근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고 지겹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일이라도 있어 세상은 조용한 건지 모른다.


직장에서 급여를 받고 안정적으로 지내던 사람이 대책도 없이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한다든지, 미성년자가 집 울타리를 박차고 가출을 하거나 또한 군인이 전역명령도 나오기 전에 부대의 담을 넘어 무단이탈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의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 대신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퇴사를 할 경우 퇴직금이란 목돈이 생기긴 하지만 급여가 끊겨 순식간 곳간은 텅 비게 된다. 따라서 재취업을 하지 않는다면 월별 관리비와 카드명세서가 날아올 때마다 불안이 엄습해 집의 평수를 줄이거나 자가 대신 전세나 월세로 갈 수밖에 없다.


어린 나이에 집안의 장남임에도 대문을 박차고 가출을 했던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도 혈혈단신으로 상경했을 때 제일 먼저 그를 기다렸던 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배고픔이었다. 따라서 공사장 인부나 쌀가게 점원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되어 중국에 주둔하던 일본부대에서 목숨을 걸고 탈영해서 중경 임시정부까지의 수천리길을 맨발로 걸었던 전고려대 총장 김준엽의 경우에도 붙들리면 가는 감옥보다 더 무서웠던 게 목마름과 배고픔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별 재미도 없고 갑갑하기만 한 먹고사는 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꽤 소중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무시무시한 태풍을 몸으로 막아내는 방파제와도 같다. 위인과도 같이 우러러보이고 높은 산의 정상과도 같이 대단한 것들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마치 그림 속의 떡과도 같을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이토록 중요하지만 의식주의 해결로 삶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기에 정신적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하며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정주영은 어린 나이에 농사를 짓는 안정된 삶을 뿌리치고 집을 나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성공의 일념으로 혼신의 노력을 했기에 세계적인 대기업의 경영자가 되는 꿈을 이뤘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준엽은 일본군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며 지냈더라면 밥걱정은 덜 수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탈영을 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임시정부로 가서 독립군이 되었기에 황국의 신민으로 지낸 이들과는 달리 당당했을 뿐 아니라 사후에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먹고살기'와 '정신적 만족' 사이에서 늘 불만스럽지만 묵묵히 살고 있다. 시절이 좋을 때는 먹고사는 것 이외에 멋과 낭만도 찾지만 IMF금융위기나 요즈음 같이 상가마다 폐업이란 글자가 붙는 힘든 시기에는 일이라도 하며 끼니 걱정을 떨치는 것만 해도 다행일지 모른다. 미래의 찬란한 꿈을 실현하는 건 푸른 창공만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되는 건 아니다. 갑갑한 일상일지라도 이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지금보다 나은 날을 기다리며 칼을 가는 것도 훌륭한 삶의 자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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