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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봉기 Mar 13. 2022

미운 사람 되지 않기

내가 지금껏 약 육십 년의 삶을 통해 만난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는 이름 석자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이름이 선명히 기억 속에 있으면서 앞으로 세상 어디에서라도 마주칠 일이 없었으면 싶은 사람도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상대방도 나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만일 그런 사람이 피해자였다면 몰라도 가해자였다면 나 같은 존재는 이미 그들의 의식에서 지워져 있을지 모른다. 한일관계에서도 그렇듯이 짓밟은 쪽은 상대방의 고통을 스스로 정당화 혹은 합리화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짓밟힌 쪽은 그 고통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 남아  괴롭힘을 당하는 법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미움의 먼지가 자욱한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건 자신과 어떤 형태로든 갈등 혹은 대립 관계가 있던 경우이다. 갈등이란 주로 개인적인 성격차 때문에 생긴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인간들은 자란 환경이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에) 성인들에게 있어 성격 차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격차이가 심화 확대되어 함께 있고 마주 보는 것 자체가 싫어지는 경우는 단순 성격차가 아닌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엔 과거 30년도 지난 시절 지나치게 이기적이었던 한 사람과 어찌하다 몇 달간 함께 생활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유학이란 걸 가서 생활이 바쁘고 힘들 때였는데 지난 일이고 별 유쾌하진 않지만 머릿속에는 꽤 선명히 남아있다. 그는 나이도 나보다는 몇 살 위였는데 집에서 막내라 그런지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밖엔 몰랐다. 남을 이해해 주고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고 자기에게 조그마한 손해가 있어도 생색내면서도 필요한 것은 안면 몰수하고 나서는 일방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20대 중반도 안된 나이에 병역도 연기한 채  유학이란 선택을 하였다. 당시 나는 현실적인 이해관계보다 인간적 혹은 순수한 가치만 중시하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이상 추구형이었다. 반면 그는 자신과의 이해관계상 유불리만 따지는 단순하고 현실적인 스타일이다 보니 매사에 나랑 맘이 맞지 않아 나는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만 나날이 가중되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나에겐 연장자였고 경쟁하는 관계였기에 내가 넉살 좋게 웃어가며 지낼 정도의 여유를 보이지 못하고 지내다 보니 생활 자체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스트레스받는 걸 표 내지 않고 지내다 한 번은 불쾌한 말을 내뱉기에 처음으로 실력행사(?)를 하자 그도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사실인즉 부엌에 바퀴벌레가 나와 바퀴벌레 퇴치용 알약을 바닥에 뿌렸는데 바닥에 흩트린 알약의 양이 적다며 다구 쳤다. 자기도 약을 사는데 같이 돈을 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찌나 기분이 나쁜지 통에 든 알약을 바닥에 몽땅 다 뿌려버리고는 내 방에 있는데 그걸 확인하고는 내 방에 들어와 머쓱한 표정으로 왜 그랬는지 물었다. 자기는 늘 자기밖에 모르고 일방적으로 행동하다 보니 상대방이 얼마나 괴롭고 불쾌한지를 모르고 지냈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몇 달을 그리 지내다 다른 집을 구해 나가려 했는데 어찌하다 일이 꼬여 내가 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월세 아파트의 거실에 침대와 책상을 놓고 함께 생활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그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은 함께 사는 다른 이들도 나처럼 느끼다 보니 그들과도 사이가 좋을 리 없었는데 드디어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그 사람보다 몇 살 위였던 한 사람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는 자신이 이기적이란 공격을 받자 악을 써가며 "나는 내 돈으로 본드도 사서 구석에 카펫 떨어진 데를 붙인 적도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상대는 "얼마 되지도 않은 걸 하나 한 걸 가지고 유세 부리는데 매달 임대료 낼 때 우표값 25센트까지 1/n로 받아 내는 사람이 큰맘 먹었네"라고 쏘아붙였고 그 참에 그 사람의 이기적이었던 사례를 통으로 모아 지껄였다. 마지막으로 "나만 당신을 욕한다면 내가 사람이 나빠 그렇다 하겠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똑같은 얘기들을 한다"라고 공격을 하니 그제야 멈칫하며 자신의 문제 있던 행동을 인정하는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 이기적이던 사람은 늘 현실적이고 자신의 일에는 충실한 편이라 석사를 마치고 미국 자격증을 하나 취득하여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고 동창모임에서도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볼 일도 없고 볼 필요도 없겠지만 영원히 살지도 않는 삶 속에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까지 받고 지내며 자격증 하나 딸랑 가지고 전문가라고 큰소리치는 삶이란 성공이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남들에게 존경은 받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미운 사람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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