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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Jul 04. 2024

남편의 게임중독

이혼하지 않기위한 몸부림



지금 내 심리 상태는 아직도 완전히 정상은 아니지만, 이 날 내 감정의 동요가 무엇으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 남겨놓을 요량으로 이 글을 쓴다.

게임중독이라고 이름붙인 건 다름아닌 남편이 게임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특히 나와의 부부사이에 당연하게 지켜야 할 (정확하게는 이사하면 꼭 지켜달라고 했던 나의 말을) 약속들을 밥먹듯이 어긴 데서 시작했다.

아끼던 막내 덕구가 세상을 떠난 이래 여전히 하루 한번 복구의 산책을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루는 남편을 쭉 지켜봐왔다.
혼자 산책을 데리고 나가는 법이 좀처럼 없던 남편은 덕구가 살아있을 때에도 늘 피곤하다는 이유로 두마리 산책은 절대 하지 않고, 하더라도 나와 같이 나가서 에너지가 좀 더 슬림한 복구의 목줄만을 잡곤 했다.

덕구가 죽고 난 뒤,나는 덕구의 목줄을 좀처럼 잡을 생각이 없었던 남편이 너무 미웠다.
애초에 동물을 기르지 말았어야 할 인간이 엄마같이 챙겨주는 와이프를 만나 본인의 호기심을 채우려 키우게 된 아이들이었다.

처음에는 배변패드조차 치우지 못한 상태로 1년을 지나오고, 지금은 토한 자리까지는 치울 줄 알지만.

개를 키우면서 산책을 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자격이 없는거다.
코로 냄새를 맡아서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짧은 산책이지만 한시간남짓의 코킁킁으로 에너지를 쓰고 집에서 휴식을 보내야 할 동물을 본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산책해주지 않는 사람은 사실 개를 키우면 안된다.
내 남편은 개를 키울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 분명하다.

사건의 발단은 남편의 라스트워라는 모바일 게임중독이 시작이었고, 내 감정이 절정에 치달았던 건 퇴근 후 남편이 누워서 그 이름도 거지같은 모바일게임에 시선이 고정된 채로 "라면 없나?"라는 말로 나의 일방적인 희생을 원했을 때 터졌다.
"내가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냐?'


다시 봐도 부아가 치밀던 지난 주말의 게임중독자들


하필 나는 이 남편의 담배값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고 해외여행을 마치고 온 친구에게 부탁해 면세담배를 가지러 지하철을 타고 친구집에 갔다가 친구남편의 차로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윤상이한테 저녁 같이 먹자고 했어?"

친구의 남편 a는 동갑이기도 하고 낚시를 같이 간적이 있는터라 남편을 좋아한다.

퇴근하고 이쪽으로 와서 같이 치킨피자를 먹자는 전화에도 피곤하니 집에서 쉬겠다는 말뿐,

"부르지마 그냥.. 어차피 안올 사람이야. 본인 피곤하도 귀찮으면 죽어도 안움직여. 그리고 주차 한번 해놓으면 절대 차 안 빼."

내가 터진 건 예견된 일이었다.

주말 저녁 같은 게임을 하는 내 동생과 개 산책을 하고 저녁식사로 포장한 항아리보쌈을 펼쳤을 때, 거의 15분을 포장을 뜯지 못했다.

보쌈이 다 식었을 때 동생이 한마디.
"오늘 사실 8시부터 전쟁이 있어."
이 말은 곧 8시부터 자기들은 나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없고 자기들 게임유저들만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거란 얘기였다.

90여명의 연맹원이 있고, 그 안에서도 커뮤니티 대화방에 참여를 메인으로 하는 동생과 남편은 이미 나와 제부가 안중에 없는 명백한 게임중독자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이 바람을 피우거나 폭력성을 보이는 건 아닌데도, 이미 밥을 앞에 두고도 못 먹고 게임에 빠져있거나 나와 제부와 넷의 식사자리에 집중을 못하는 것만으로 나와 제부에게는 엄청난 폭력(방치)이 된 셈이다.

우리가 떠난 베트남여행에서도 이들의 만행은 멈추지 않았다. 폰을 손에서 놓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보물!"을 소리질러가며 교차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난리들이었다. 제부와 내가 알 수 없는 단어를 써가며.
이 당시의 소외감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는 수순이었다.

3월에 비교적 늦게 빠진 내 남편 역시 동생의 레벨과 맞추기 위해 차츰 현질을 해대기 시작했고, 나는 네이버결제로 하는 남편의 현질액수가 누적되는 양을 보며 여기서 더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인 날에 오지마 우리집. 그거 니들끼리 끼적대는 거 하고 오든지 해 . 밥상머리 앞에서 짜증나게 둘이 그러고 있지 말고."

회식이 있어 밤늦게 우리집에 온 제부 역시 며칠전 동생에게 "같이 있는데 같이 있는 느낌이 안든다. 핸드폰만 보고 있지 말고 나 좀 챙겨달라. 외롭다."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제부도 얘기했구나. 나도 방금 보쌈 못 먹어서 빡쳐서 이 둘한테 전쟁하는 날 우리집 오지 말라고했어."
제부는 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듯 보였다.

"라스트워 하는 애들 다 미친거같아. 자기 생활이 돼?"
"이거 현질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지. 레벨 유지하고 더 쎄지게 만들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그냥 게임을 즐기러 하는 수준이 아닌 R4라는 운영진급 레벨의 두 사람은 이미 더이상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 듯보였다.
이 둘 뿐 아니라 그 게임에 참여하는 운영진급 이상의 사람들은 직장 안에서도 게임 아이템을 채굴하거나 커뮤니티 대화에 참여하느라 그들의 일상을 크게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언니 여기 한명은 이 게임 세상이 본 세상이여."
동생의 말에 나는 더 어이가 없었다. 내 동생보다 더 심한 중독자가 있다니............

이 게임을 하는동안 바깥 햇볕을 보러 한번도 나오지 않고 그게 이틀이 지나고 3일이되어가자 제부는 불안해했다.

나는 우리 복구라도 데리러 오게 하고 복구를 며칠 맡아달라고 하는 방법으로 동생을 나오게 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게임열정을 꺾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밖에서 돈버느라 바쁘고 힘들었는데 그거 하나 이해 못해줘??"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내 남편은 장사하는 7년동안 은행대출과 가족들 돈 2억이 넘어 3억에 가까운 돈을 쓰고도 통장에 1000만원조차 가게장사로 벌어 놓은 적이 없는 무능력한 자영업자다.
아파트 분양으로 인한 시세차익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사 역시 어불성설이었다.
엄마와 큰엄마에게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으로 간신히 구해서 들어온 구축 아파트의 원리금으로도 이미 남편의 월급이 빠듯하게 유지되는 찰나에, 합산 150만원이 넘어가는 현질을 한 남편을 보다가 부아가 치밀었다.

조금 더 싸게 사려고 쿠팡과 네이버 아이허브를 밥먹듯 뒤지고, 내 옷 내 신발은 외출복이 아니면 거의 당근으로 챙겨입는 내가 남편과 동생만은 좋은 걸 주기위해 영양제를 뒤져서 사고, 동생에게는 휴대폰을 사주고, 남편에게는 어느 정도 현질의 편의를 눈감아주기로 했는데,

이 편의제공이 이들에게 당연한 대접이라고 생각한건지.

이들은 눈치가 없이 계속 자기들만의 취미로 나와 제부를 등한시했다.

내 남편은 20대에 나와 결혼했을 당시에는 카드놀이를 새벽까지 하다가 나랑 이혼얘기가 오간적이 있다.
30대 초반이 되어서는 갑자기 주변 친구들이 너무 잘 됐다며 토토와 코인에 손을 대려고 해서 내가 당시 모은 돈 100만원까지만 쓰라고 했더니 코인이 단돈 17만원이 남은 적도 있다.
나는 그 때 남편이 내가 소중하게 장사안될 때도 몇천원씩 아껴서 모은 돈 100만원을 잃고 나면 나에게 미안해서라도 경제개념을 조금 탑재할 줄 알았는데
영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나는 아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상태다.

본인이 무슨 상처를 나에게 주었는지 기억 못한채, 힘든 자기한테 짜파게티 하나 못 끓여주는 아내가 된 나는 길게는 40살이 되기 전, 짧게는 이번 7월이 가기 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약속이다.
본인과 배우자가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서로를 존중해주고, 격려해주며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는 동반자적인 관계.
이 또한 어찌 보면 비즈니스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비즈니스파트너는 본인의 선택으로 아파트 투자를 남의 돈(은행과 가족들)으로 한 상태임에도 경제적인 개념 자체를 탑재하지 못한 채 지출을 감행하고 있고,
심지어 퇴근 후 내가 차려놓은 밥상을 스마트폰게임을 하면서 대충 하는 대답에 이어 식사가 끝나면 에어컨이 있는 작은방에 들어가 디스코드인지 뭔지 헤드셋을 끼고 커뮤니티 채팅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이들과의 소통이 재미있어 거실에 덩그러니 나와있는 나에게 눈길을 주는 시간이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대화 물꼬를 트려고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하루종일 대화가 배부르다, 잘자요, 뿐인 날도 있다.

게임이 나와 남편의 관계를 망친 것이 아니다.
게임을 적당히 조절하지 못한 남편이 우리 사이를 조금씩 망치고 있다.

조금 더 빨리 대처했어야 했을까.
일 시작하면 괜찮아질거야 하며 안심한 내가 바보같고 멍청하다.

4개월째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남편에게
내가 뭘 더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내가 이 남자를 위해 7년을 장사를 하느라 경단녀가 된 나의 선택을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해야 이 남자가 나한테 관심을 줄까.
나는 아들같은 남편을 키우다가 정작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너무 많은 걸 열어준 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편 가게가 어찌되든말든 너는 니 직장을 놓지 말고 계속 다니라고 했던 언니들의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부부라 함께 하기 위해 내 모든 통장잔고를 남기지 않고 남편의 가게 월세에 부었던 내가 얼마나 미친년이었는지를 또 새삼 깨닫는다.

아침에 같이 깨서 남편의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챙겨주고, 냉장고에서 단백질우유나 바나나를 챙겨주고, 혼자 출근하는 길이 고될까 일부러 같은 시간에 맞춰서 복구를 데리고 산책을 가는 내 마음이 남편한테는 그냥 당연한 일들이었을까.
관리비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고 집에 있는 시간 내내 냉방기기는 켜지도 않다가 저녁 6시가 지나서야 겨우 남편이 돌아왔을 때 시원함을 느끼게 하려고 에어컨을 켜고 저녁을 준비한 나의 노력은 그냥 멍청한 쌩쑈였을까.

동생이 오늘 놀러오기로 했는데, 동생한테도 불똥이 튈 것 같아 못 오게 해놓은 상태.
제부와 동생이 좋아하는 내 친구의 쿠키를 일부러 사와서 놀러오라고 한 나는 그냥 그 쿠키를 택배로 보내줄 생각이다.

동생마저 내 집에 와서 빈둥거리며 스마트폰 그 작은 액정을 보고 그 안의 액티비티를 하느라 내가 챙겨주는 밥도 영양제도 둘이서 즐겁게 먹지 못하는 그 사태를
더이상 두고 보지 못할 것 같다.

이 사태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것 같고,
나는 충분히 남편에게 실망을 넘어선 좌절을 느낀 것 같다.

이미 4월초부터 이상하다는 유심을 제발 좀 교체하라고 해도 안 듣더니 지난 주말 일요일 하루 먹통이 된 스마트폰에 미간부터 찌푸려진 인상 하며, 개 산책을 시키는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복구의 얼굴과 내 얼굴은 아예 쳐다도 안보고 폰 액정만 보며 걷는 남편을 보며 다짐했다.
"이 상태로 가면 같이 늙어가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애초에 남편은 극한의 효율충이라, 나와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같이 가는 게 힘들다. 본인이 피곤하면 쉬어야 하고, 본인이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늘 따라주었던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이제 나를 죽여가면서 내 남편의 입맛에 맞춰 살기가 싫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대로 늙어 60대가 되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시부모님의 부부 모습이 될 것만 같다.
나는 이제 시부모님을 안쓰러워하게도 되었고, 지금도 친정보다 시댁을 먼저 챙기지만
일전의 손하나 까딱하지 않던 아버님의 모습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현재는 시어머니가 일을 하시게 되면서 전업주부로서의 새 삶을 살고 계시는 시아버지지만
내가 바라본 8년동안의 아버님은 본인이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보다가 리모콘을 떨어뜨리면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님과 나에게 오셔서 리모콘을 꺼내달라고 나오시는 분이었다.

나는 절대 내 남편의 그런 노후를 목격하고 싶지 않다.
내 40대는 그런 배우자를 고른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며 세월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다.

곁에 항상 있으면서 늘 공기처럼 채워주는 나의 애정, 가끔은 나의 희생을
줄이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볼 생각이다.

소중한 건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그 진리를
남편이 조금은 눈치채고 잃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원리금 똑바로 갚게 이직확정하고 그만둬."
"너 혼자 힘들어? 우리 주변만 봐도 너보다 힘든 사람들 많아. 혼자 징징거리지마. 새벽 2시까지 야근하는 동생도, 아프리카 출장을 밥먹듯이 가는 제부도 있어. 365일 하루도 안쉬고 혼자 장사하는 엄마는? 지금 너는 힘들다고 해선 안돼. 집사겠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니가 원한 집 샀잖아. 니 선택이야."
남편은 수긍하는 듯 보이지만 오늘의 내 대응에 억울한 점도 있어 보인다.
"내둥 가만히 있다가 왜 터졌지."
내가 4개월동안 참고 기다려준 것이라는 건 언제쯤 알아줄까.

긴 일기도 끝내고,
나에게 집중하러 가야겠다.
아침은 챙겨주지 않고, 개와 산책을 나갈 생각이다.

손이 있으면 냉장고에서 꺼내 먹겠지.

이 글을 별로 볼 사람도 없지만,
혹시 보는 사람이 "더 많이 배려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면,

가끔은 그 배려를 멈추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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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나와야 맛이야 아빠
눈치챙겨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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