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꿈에 덕구가 나왔는데!!! 아니 근데 우리 막내가 글쎄 옷을 입고 있더라니까!!" 그것이 충격이었다.
우리와 사는 내내 옷을 입거나 뭐 하나 걸치는 것도 답답해하던 녀석이었는데, 꿈속에서 말도 안되게 귀여운 흰 바탕에 노오란 스마일인지 오리인지 모를 패턴이 따박따박 박혀있는 나시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얘기에 남편이 보인 반응이 참 시원해. "덕구 여친 생겼나보네."
ISTP남편은 언제나 구구얘기는 F로 흐른다는 점이, 9년째 배우자인 나를 당황스럽지만 행복하게 하는 듯. (그 T적인 상황가정을 높이 평가함)
아이를 보낸 지 1년이 흘렀어도 늘 마음을 짓누르던 죄책감, 자책, 후회나 잘해주지 못한 기억들, 사고가 나던 당시의 끔찍한 기억들, 아이의 마지막 모습, 장례식 모습만 떠오르는 게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미안함만 느끼며 후회와 통한의 눈물로 아이의 사진을 끌어안고 울었던 것 같다.근 1년을 가까이.
이사온 집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만들어놓은 덕구의 추모공간.
아침 8시반. 덕구의 고기를 여러종류로 사줘야지, 하며 마트가기 전 잠깐 만난 동탄왕언니 념을 만났다. 그녀는 2014년에도 그러했듯 나의 심리를 부드럽게 저격하고, 맛사지해주고, 극 F인 나를 조금은 T로 만들어주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 이번에도 그녀에게 얻어마신 따뜻한 커피한잔, 갈비탕 한그릇과 함께 데이비드 홉킨스의 감정지수에 대해 듣고서, 나의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너의 생도 그 아이의 생도 각자 사는 동안, 존재하는 형체가 있는동안 할일들 다하고 가는거야. 너도 죽을거고. 살면서 모든 생물 심지어 사물도 에너지를 내뿜는대. 근데 그게 부정적에너지도 있고 긍정적에너지도 있어. 너의 마음이 괴롭다면 그건 부정적에너지를 내뿜게 되는건데, 육체에서 자유로워진 아이에게도 여전히 너의 에너지가 전해지거든. 그러니 1주기를 잘 챙겨줘. 그런데 너무 부정적인 기운으로 아이 마음을 괴롭게 하지는 마. 그 기운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서 아이가 못 다가와.용기가200이라는데 그걸 넘어서 긍정적 에너지를 아이한테 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
이 말을 처음엔 이해못한 채로 그녀와 헤어졌다. 덕구에게 줄 간식을 그릇에 놓으며 제발 펑펑 울지 말고 1년에 한번뿐인 덕구의 1주기를 차분하게 보내보려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눈물바람으로만 아이를 그리워했구나. 아차 싶었다.
그 좋았던 아이와의 추억을 내가 다 망그러뜨리고 있었구나. 어쩌면 덕구는 몇번을 내 주위를 맴돌았는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늘 재미있어 보이면 방안에 있다가도 착착착 걸음을 크게 움직여 거실로 밖으로 늘 나오던 녀석이었는데. 이사온 이 동네에 새로운 냄새를 찾아오는 게 오래 걸려도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를 찾아올수도 있는데 어쩌면 그때마다 내가 늘 자책으로, 눈물바람으로 가슴을 치느라 우리 막내가 마음이 무거워서 내곁에 내꿈에 못왔구나.. 싶은. 나 자신이 한심했다.
덕구는 씩씩했다. 언제나 천진난만하고 가만히 있을 줄 모르며, 목청도 크고 머리도 크고 코도 덩치도 큰 시바믹스. 흑시바 특유의 댕청미도 있지만, 그냥 바보인가 싶을 정도로 발을 밟히고도 소리지르거나 으르렁 댈 줄 모를 정도로 사람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다. (복구에게만 잔인했던) 그런 덕구를 하나하나 기억해내려 하지 않아도, 나와 내 남편. 내 주변의 덕구를 봐왔던 지인들에게는 우리 막내의 존재감은 6년이 아니라 60년 짜리다. 그렇게 이 녀석은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 할 6년을 살다 갔지만 영원히 나의 스타. 나의 빛나는 별일 것이다.
나의 가장 빛나는 별, 덕구와 함께 한 사진들은 안방에 두었다.
밤 11시. 동생부부가 찾아왔고, 우리는 왁자지껄한 덕구의 추모함을 보고, 또 거길 가서 간식을 훔쳐먹는 복구를 보며 웃으며 덕구의 1주기를 치렀다. 자연스럽게, 늘 그렇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따뜻한 마음으로.
덕구가 즐겨찾던 간이 안된 항아리보쌈 수육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치석제거에 좋은 코코넛껌, 닭가슴살과 개빼로, 종이컵에 구겨넣어주던 간식들. 지치지말고 잘 놀으라고 놔준 홍삼스틱도. 거제도에서 소품샵에서 마음에 드는 덕구용 조명을 못 찾은 대신 사온 곰돌이팔찌도 덕구의 스톤위에 놓아주었다.
언젠가는 덕구를 보내는 날의 기억에 아픈 날보다, 그 녀석과 같이 살았던 6년의 아름다운 기억을 더 꺼내며 웃을 수 있기를.
덕구가 좋아하는 고기와 간식과 새 장난감 놔주기
베란다를 좋아하던 녀석을 위해 잠시 옮겨둔 추모함
덕구 추모함 보쌈 다 먹고 튀는 복구. 난 아무것도 못봤다.
복구는 덕구가 죽고 나서 살이 자꾸 찌고 의기양양해졌다. 곤지암에서도 그랬듯 덕구 추모함 앞 간식도 은근히 내가 안볼때마다 스틸해가는 재미가 좋은가보다.
오늘은 못본 척 냅두자.
울어야 할때 울어야 산다. 남아 끝내야 하는 우리 인생도 소소하게 살아낸 후에 이 앞길 모르는 인생도 언젠가 끝내고 덕구를 만난다면, 당당하게, "덕구야. 엄마 덕구가 기다려주는 동안 이렇게 씩씩하게 잘 지냈다? 잘했지?" 라고 물어보고 싶어서 사실은 덕구한테 그 앞발로 쓰담쓰담 받고 덕구를 마음껏 안아주고 싶어서 오늘도 조금만 울기로.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했다. 다들 언젠가 만나면 헤어져야 함을 안다면,
복구가 아침에 산책가자 조르던 걸 짜증내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또 꾸짖고 기쁘게 똥가방을 메고 길을 나서는 것처럼 곁에 있을 때 많이들 안아주고 떠나보낸 뒤에는 떠난 이가 자유로워질 시간을 천천히 준비해두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나와 덕구의 연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일 뿐, 덕구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어질 수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