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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Aug 03. 2024

누군가의 삶을 파괴했다

우리 모두 벗어날 수 없는 파괴범들



비가 온 다음날은 땅을 보며 구구와 산책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수십마리의 지렁이가 아스팔트위에 나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다니느라 복구도 나도 밟지 않으려 애쓰게 되는

복구 산책 중에 발견하는 지렁이 사체들에 이제 나도 무감각해질 때쯤,

아파트 인도의 보도블럭 사이 지그재그모양의 틈을 따라 파고들려는 지렁이 한마리가 애처롭게 몸을 틈 모양대로 비틀대는 게 보였다.


지그재그 몸을 열심히 꺾으며 흙속으로 들어가보려고
보도블럭 위를 그렇게나 한참 헤매다가 말라버릴 지렁이


복구가 갑자기 살아남아 살길을 찾는 지렁이한테 앞발을 뻗어서 나도 모르게 목줄을 확 낚아챘다.
"안돼 복구야 지렁이한테 하지마!"
복구는 꽤 당황한 것 같았지만 유유히 자기가 맡던 다른 냄새를 찾아 걸어가기 시작한다.

너와 나는 파괴범이지


머잖아 저 지렁이도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죽어가겠구나.

길가다가 지렁이를 보면 징그럽다고 소리칠 수도 있다.
왜 저런 징그러운 게 돌아다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바쁜 출퇴근길에는 땅을 보며 걷지 않으니,
먹고살기 바쁜 이들에게는 남을 배려하라는 강요는 폭력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잘뻗은 도로는, 잘 지어진 건물들은,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진 이 세계는 누군가의 세계를 파괴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빵빵거리며 좋은 차 빠른 차를 타고 인간의 더 빠른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는 고속도로에도 고라니, 들개, 멧돼지들이 출현한다.

동물원에서 탈출하거나 산에 살던 산동물과 곤충들이 새 아파트단지나 민가에 출현하기도.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것이니 사살하거나 이미 차에 치어죽거나 살충이 된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키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들의 무수한 삶들을 파괴하고 있음을,

지렁이를 통해 생생하게 보게 되다니.


이미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파괴를 학습하지 않았을 뿐 생존 자체가 지구에 부담을 주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정말,

존엄한가?

우리를 위해 죽고 증가하는 인구보다 더 많은 다른 생명체들의 그 죽음은,

인간을 위해 당연한 것들일까?


불교에 입회하지도 않았는데,
덕구의 죽음 뒤로 윤회사상이라는 걸 믿고 싶어서인지 부쩍 내가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산다면, 이라는 N의 가정이 두둥실 떠오르는 여름 무더위다.


우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고
죽은 후 뭐가 될까.
죽음 뒤에 무언가가 있기는 할까.

그렇게 수없이 죽어간 많은 지렁이들,
인간보다 더 좋은 것 누릴 수 있게,
더 행복할 수 있게,
좋은 걸로 환생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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