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취업준비에 열을 올리는 나는 3일간의 집단상담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라는 전국에 있는 지역센터의 방식으로 경단녀들을 위한 구직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이나 상담, 직업알선을 해주는 곳이었고, 3일간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를테면 적정직업을 탐색하는 방법이나 mbti검사, 노무관련 법, 구직을 위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모의면접 등)을 접할 수 있는 엄청나게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거에 세금이 쓰이는 건 아깝지 않다는 생각. 이런 건 참 잘하는구나 우리 정부가.
그런데 정부가 계속 놓치는 게 있다는 걸 나는 스타벅스에서 알았다.
면접을 보러 간 회사 건너편에 큰 스타벅스가 있어서 마침 시간이 남길래 1시간 30분 가량을 미리 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널찍한 2층에 이미 중년의 손님 몇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어 개의치 않고 음료를 받아 앉았다. 내 테이블 대각선 방향으로 중년여성 2명이 앉아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는데, 아이의 고등학교 입시문제로 둘이 만난 듯 보였다.
"그래서 걔네 엄마는 의대 보낸대?"
"어~ 애가 성적이 되나봐."
"그 학원 보낸대?"
"어. 그래서 나도 거기 물어봤거든."
"그 학교는 커리큘럼이 좀 별로라더라고."
"다음달에 그래서 애랑 거기 가볼라고."
"그 선생님한테 그거 얘기했어?"
"어. 근데 그 선생님 신경 잘 안 쓰는것 같아."
듣기만 해도 탁구의 랠리처럼 숨막히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엄마 열정 대단하다라는 생각으로 들어줄 만 했지만 1시간 내내 계속되는 엄마들의 아이 이야기는 점점 듣는 것만으로 숨이 막혔다. 주어가 자신들이 아닌 온통 아이 이야기, 매일매일을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까지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없는 엄마들의 "올인"이 부담스러워보인 건 가진 게 없어 너무 독립적으로 살아온 나의 질투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아빠에게 한번도 "공부해라" 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이 자랐다. 오히려 할머니 손에 맡겨진 이후로는 밤늦게 공부하고 싶어도 전기세 아까운 할머니가 부엌에서 불을 끄니까 그냥 자야 했다.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는 할머니들끼리 오손도손 모여 10원짜리 내기 윷놀이를 하는 날과 밭일도 해야 하는 할머니를 도와야 하는 매일(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로서)이 쉽지 않았고 오히려 밤 10시까지 하는 야자(야간자율학습)가 반가울 정도였다. 월 8만원짜리 독서실을 다니는 사촌동생이 부러워 나도 한달만 다니겠다고 했다가 등짝을 맞고 돈없으면 공부도 못하는거라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서나 문제집 살 돈은 충분치 않으니 선배나 선생님들에게 얻거나 연필로 푼 친구들의 문제집을 받아 지우개로 지워서 썼다. 기집애가 대학나와 뭐할거냐 농사나 돕고 땅부자만나 시집이나 잘 가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집에서, 큰엄마의 도움으로 충남 시골에서 경기권 4년제 대학을 들어갔고, 증명해보이고 싶어 1학년 2학기에 과 1등을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대야 해서 1등은 다시 못했지만 조교님 도움으로 4학기 정도는 부분 장학금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랬던 나여서, 어쩌면 저 두 엄마들의 저 케어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서른 후반의 나에게 저 엄마들은 무언가 "자신"들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저렇게 해서 보낸 자식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고, 결혼을 해서 완전한 독립을 하러 떠나고 나면 그 빈둥지 증후군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분명히 아이를 낳았다면 저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을거라는 생각, 어쩌면 나는 아이를 괴롭힐 정도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나같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아이가 없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집단상담에서 만난 한 언니는 대기업 연구원 출신의 경력자였는데,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오면서 경력단절이 되었고, 그 후로는 두 아이를 키우는데 올인을 했다가, 아이들이 둘 다 예체능(첫째가 미술, 둘째가 음악)을 한다고 했다. 너무 오래 경력이 단절된 터라 언니는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가 관심있는 교육과정에 신청을 넣었는데, 그 과정의 면접에서 탈락을 했다고 아쉬워했다. 열다섯명의 모의면접에서는 자신감이 너무 없고 목소리가 작으니 조금 고치면 좋겠다는 지적을 들었다.
분명 아이의 입시에 도움이 되려고 어려운 취업의 길을 선택해서 나온 것 같았다. 입시 기간이라서 여기저기 아이들의 성적에 맞는 학교로 준비시키고 함께 가고 고민하는 모습이 멋있기도 했지만, 지금 이 교육이라는 현실이 "엄마의 도움"없이는 아이가 망가지는 길인걸까, 하는 교육정책기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일안하는 엄마없으면 애가 입시도 못넣겠어."
남편에게 돌아와 엄마들의 "자기없는 자기"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우리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공부 성적이 양가양가 방가방가(그 당시 고등학교는 수우미양가였음. 남편의 유일한 수는 체육)인 아들을 위해 당시 2003년에 서울대생 40만원짜리 과외를 붙여주셨던 우리 어머님...
"야 근데 안될 애들은 안하더라. 얘 있잖아, 그 과외선생 월급 타는 날 오토바이 타고 나가서 밥얻어먹고 오더라."
"아 어머님 돈 뿌리셨네요.... 그래도 그 대학생누나는 알바자리 구한거니까 사회경제에 좋은 일 하신거에요."
우스개소리로 어머님을 웃겨드렸지만 사실 나는 가끔 남편이 밉다. 7년만에 얻은 아들이랍시고 애지중지 키워놨더니 자기 혼자 하는 게 별로 없고 부모님 생일도 가기 귀찮아하는 후레너구리같은 놈.
다음달 생신 기념 주말식사은 주말에 야유회가 있는 남편을 대신해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사실은 안가도 되고 굳이 힘들게 혼자 뭐하러 오냐 집에서 쉬라는 시부모님 말씀도 있지만 이제는 내 마음이 가는 게 편하니 간다.
"아이고 아들 못봐서 어떡해요 이거 며느리 보는걸로 괜찮으시겄어요?"
신혼 때같으면 아들도 없는데 너 와서 불편하게 뭣허니 오지마라 하시던 분들도 이제는
"야 언제는 뭐 우리가 아들이랑 얘기했냐? 걔 맨날 오면 방들어가서 자기만 하는거. 너랑 얘기하는 게 더 재밌어."
"그래요 이번엔 그냥 아들래미 없이 며느리랑 언니네랑 봐요 다음주에 갈게요!"
결혼 9년차가 되니 남편 없이도 시댁에 가는 게 불편하지 않은 날이 오긴 온다.
될놈될이라는 말이 있다.
도와주지 않아도 공부할 놈은 하고 뭐가 되더라도 될 놈은 된다는 말이다.
개인주의 심리학자 아들러는 개인의 열등감을 극복하면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성장하는 인간을 논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면에서 열등감이 존재한다.
그 열등감은 나에게는 가난이었고 결핍이었고, 나는 지금 그 열등감을 극복해나가고 있고, 일과 성과 사회를 겪어나가며 점차 나를 더 좋아하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에 모든 어머니들이(혹은 할머니, 아버지들, 큰엄마 이모들) 내 새끼는 남보다 더 잘돼야해라는 강박으로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어 자식의 안위를 보장해주기보다는, 잘나지 않은 내 새끼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줄 수 있는 위대한 부모이기를. 그리고 남편이나 자식을 위한 지나친 이타적인 삶보다는 본인,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해줄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기를.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봤자 며느리 사위한테, 아니면 회사와 여행지들한테 빼앗길 아들이고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