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폐업 후 5개월, 취직을 하다
이력서는 48군데 정도 넣었고,
그 중 12군데 정도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실제로 간 면접은 8군데 정도.
채용공고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현저하게 심각한 곳 빼고는 마음에 드는 곳이 두세 군데 정도 있었다.
그 중 내가 연봉 욕심을 안 부리면 꾸준히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직장 한 군데에서 합격 연락이 오자마자 나머지 면접은 다 거절했다.
"연봉을 너무 줄인 거 아니야?"
"그냥 하던 거 하지 그랬어."
"더 놀다가 하지."
많은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말은 그동안 7년을 남편 가게에서 썩다시피 한 내 인생을 아무렇게나 처박아두지는 말라는 의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연봉 생각하면 나 다시 해외출장 다니고 야근하고 해야 할걸? 그리고 7년 경단녀는 신입이나 마찬가지야..그냥 일해서 꼬박꼬박 빚갚고 적금도 넣고 그러는 게 맞는 것 같아."
옛날에 얽매여 자꾸 무언가 완고해지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내 노후를 위한 자금플랜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먼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출근을 3일 앞둔 상태에서, 앞으로 출근하고 나서 혹시 잘 쓰지 못할 브런치들을, 그동안 나를 돌아본 시간들을 적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소곤소곤 적어두기로 한다.
꼴에 글짓기 좋아하는 문학소녀 출신이어서인지, 글이라는 건 내 인생에서는 절대 뗄 수 없는 절친인 기분이다. 나이가 한살 한살 더 들어갈 수록 나는 글이 좋고, 언제부터인가 내가 시간이 지나 볼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그립고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도 그런 나를 더욱 더 좋은 인생을 살게 해줄 하나의 친구라고 생각하면,
뭔가 일을 하기가 죽을만큼 싫거나 하지 않다.
뭐든지 죽을만큼 싫다고 할 정도의 것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언닌 꼭 날개 부러진 새같아."
"누나 여기서 맨날 이러고 있으니까 죽은 사람같아."
"너가 이렇게 매여 있을 애는 아닌데...."
2017년 7월. 잘 다니던 직장을 남편이 "같이 하고 싶다"는 한 마디 때문에 그만두고 연고없는 경기광주에서 7년을 살았다. 남편과 가게를 하는 동안 나를 보러 오는 가족과 친구들이 하나같이 한 말은 내가 내 모습으로 온전히 산다는 느낌이 없이 힘아리가 없어보인다는 것이었다.
대차게 부정하고 "나는 현재를 잘 살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하기에 우리의 장사는 사실 썩 잘 되지 않았다.
사업수완이 없는 남편의 욕심은 당연히 돈욕심은 많지만 일욕심은 없는 탓에 자산증식이 될 리가 없었고, 잔뜩 쌓여가는 미수금에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 때 쯤, 건물주가 재건출 이슈로 계약종료를 요구해왔다. 나는 내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모든 통장의 돈을 털어 남편 가게 월세를 메꾸다가, 문득 현타가 온 순간이었다.
"지금 아니면 우리는 정말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어."
"자기 지금 7년을 했는데, 솔직히 나 10년까지는 내 장기 팔아서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지금 일이 이렇게 흘러들어가는 거 보니 우리 가게 운이 다 한 것 같아. 접자. 사실 나 너무 재미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다보니까 항상 내 일이라는 게 안느껴져 ......... 미수도 그렇고 대리점 들어가는 돈들도 너무 다 우리랑 안 어울려. 그래서 접고 싶은데....혹시 더 장사 못해서 아쉬워?"
남편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도 이미 한계가 온 거겠지.
애초에 영업을 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닌 게, 남편은 영업차 가는 술접대 자리에 1박2일짜리 회식, 거래처 야유회에도 나를 끌고 갔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난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면 나는 먹지도 못할 술을 2차 3차 새벽 2-3시까지 마셔대면서 "와이프가 남자 일하는데 막 여기까지 와~ 남편 집착이 심한가" 라는 오해까지 들어가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두집 살림이 이런 기분인가 느껴질 정도로 집에서도 퇴근 후 해야 하는 살림에 가게에서 거래처들 밥을 해주고 있었다. 하루에 두번 세번 누군가의 점심을 차려내는 것은 간단한 것 같아도 간단하지는 않다는 걸 7년간 가게를 하면서 더 뼛속 깊이 깨달았다.
무거운 부품들을 들고 나르느라 어깨와 팔은 이미 테니스엘보와 골프엘보가 같이 왔던 상태였는데, 그 상태로도 미련하게 계속 움직이다가 변기에 앉지 못할 만큼 아픔을 느낀 뒤에야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왜 이렇게 팔을 쓰세요? 왜 혹사를 해요?"
이런 말을 의사한테 들으면 딱히 할말은 그 때 안 떠오른다.
그러나 내 속에서는 아마 하기 싫은 일들만 7년을 해서인지 그 시간 속에서 남편에 대한 분노만 쌓여갔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취업이란 정말 한줄기 빛이 확실하다.
이제 조금 더 여유로운 자금관리를 하면서,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도 하면서, 못해둔 공부들을 하나둘씩 하고 싶다. 또다른 사회로의 발걸음을 무겁게 떼는 나이지만, 언제 다시 집에 들어앉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일이 너무 하고 싶으니까, 출근을 빨리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