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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먼지
Nov 29. 2024
뚜벅이 직장인의 출근길
일어나 돈벌러 가야지
금수저인가?
No.(나무젓가락이라고 해두자.)
퇴직금을 두둑히 받아서, 아니면 아직 통장에 쓸 돈이 많아서 당분간 한두달 놀고 먹어도 지장이 없는가?
No.(이제 입사 수습 4주차, 달랑달랑 통장보유)
당장은 결혼이나 이사같은 대소사가 없어서 큰 돈 나갈 일이 없을 예정인가?
No.(이사를 올해 해서 매달 백만원씩 원리금)
내가 벌지 않아도 수입원을 보장해 줄 의지세력이 있는가?
No. (남편은 아직 백수다)
4개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 나는,
폭설이 와도
감기가 와도
타노스가 와도
출근한다.
그래야 내일이 있으니깐.
우리 남편 회 사주고
우리 복구 개껌 사주고
사람구실하러 경조사도 다녀야 하고
우리 가족들 영양제 사주고
마흔 다섯에는 대학원도 가고싶고,
월 몇만원씩 정기후원도 끊기면 안된다.
내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잘 견디는 방법같은 걸
10대에 좀 배울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30후반인 나에게는 책임지는 삶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참 친구들 사이에 유행했던 돈벌러가야지 짤
이 만화 도대체 무슨 만화냐.
왜 이리 절절해.
패러디한 짤도 돌아다니대?
우리를 아침부터 절절 매게 하고 있잖앙
좋아하는 애인이나 가족,연예인 얼굴 붙여놓고 폰 배경화면에 알람용으로 놓으면 딱이겠다 아주.
허나 나는 굳이 저게 없어도 자동알람이 있어....
버석거리며 아침이 되면 자기방(남편이 안방, 복구가 작은방, 나는 거실)에서 나와 내 옆으로 파고드는 이 녀석.
개껌값 벌어야지
개를 키우면 게으른 자도 넘어갈 수 없는 야외배변의 마법.
문까지 박박 긁어대면서 눈으로 어필하는 친구를
누가 모르는 척할쏘냐.
풉백사주고 산책 해줘야지
그깟 눈이 대수냐!!!
뚫고 밟고 적시면서 간다.
지하철도 미쳐가는 대폭설 아침풍경
나 서울행 탔어요
그렇게 정확한 기계도 컴퓨터도
대폭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나는 분명 병점역에서 수원역 가려고 서울행을 탔는데
지하철 안에 전광판에 신창행이 써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거 서울 가는 거 맞아요?"
옆에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서울가는 거 맞다고,
8분전에 출발했어야 하는 전동열차인데 아직도 출발을 못했다며.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출근길에 납작한 쥐포처럼 패딩잠바까지 쥐어짜게 밀착이 된 상태로 출근.
코레일 아저씨 감사합니다
태업은 태업이고,
고장난 전동열차 고쳐주시는 아저씨들께 새삼 감사하다.
등산스틱까지 등장한 아침 대폭설 출근길
지하철역을 나가는데 등산스틱을 든 젊은 여성이 한손에는 우산, 다른 한 손에는 스틱을 짚고 음악을 들으며 출근 중이다.
이 분 대단하네. 이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 먹은걸까.
그럼 나도 질 수 없다.
등산스틱은 없지만 비닐우산을 스틱 삼아 출근을 신나게 해보자.
때로는 또 장애물도 만나지겠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도로 위 부러진 나뭇가지들
눈이 너무 두껍게 쌓이면.
그 눈 무게를 감당못한 나무들은 자기 몸의 일부를
눈과 같이
비워내버린다.
잘려나간 가지들만큼이나 가벼워졌을까.
내년 봄에 더 찬란하게 푸르르기 위해서 잠시 자기 살을 깎아내는 것만 같다.
우리의 지금 이 눈길 걸음도
내년의 도약을 위해서라고 정신승리를 해보기로 한다.
눈 무게를 감당못해서 부러진 가지들
그리고 괜히 또 생각이 났다.
저렇게 부러지게 두지 말자.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을 때
너무 많은 눈을
감당하며 살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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