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줄게. 진짜 정리해?

이판사판 딩크부부의 확실한 화해.

by 김먼지


"지금 뭐라그랬어?"


잘못 들은 줄 알았지만 아니다.

"내가 애기 얘기한 게 첨부터 배려가 없었다고 말하는거면 그래 우린 안맞는 게 맞지. 진짜 정리하자."

"애기 얘기는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쉽게 얘기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게 대화가 안되는거야?"

"아니 니가 애기 갖고싶지 않은 걸 애들 앞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것처럼 나는 갖고싶다고 말도 못해?"

"지금 이 경제적상황에 니 벌이가 조금 더 나아지고 살림을 예전보다 더 많이 참여하는 걸로 애기 낳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나는 더 이해가 안가."

"그게 왜..예전하고 다르게 이제는 내가 살림도 참여하고 아이 키우는 아빠로서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게 왜 안되고 배려가 없는거야..그리고 당장 갖자 라고 말한것도 아니고 그냥 갖고싶다고 말한것뿐인데 너 지금처럼 감정기복 심해지고 그런거면 .. 아니 이렇게 대화가 안되는데 그럼 어떡해."

도돌이표의 연속.

원인은 남편의 금연 금단증상과
내 마법 콜라보로 인한 스파크였지만

대환장파티 2일간 우리는 바닥을 보이며

속얘길 다했다.

그러다가 공감이 필요한 나와 해결이 필요한 남편과 나 사이의 도돌이표 논쟁 중 남편이 처음으로 "정리하자" 한 마디를 꺼냈고

분위기는 급랭 그 자체였다.


그런데 늘 파워 N으로 항상 여러 가지 결과를 예상하고 짐직하는 나답게 그 말에 대답했다.


"그래? 정리하자는거지 맞지.?알겠어."


진짜 끝내는 게 맞을 것 같아 차분하게.
내 딴엔 진짜 N에서 S로 바뀐 게 다행인가.
오히려 차게 식어가는 머리에서 다음 수가 그려졌다.


"응 이 집에는 너 그냥 있고 내가 원룸 얻어서.."
"아니 원룸 얻을 게 아니고, 일단 그럼 이 집부터 정리하자."

남편은 원룸을 자기가 얻어 나가겠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 안에서 남편이 이집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있었기에 우리 사이의 끝은 이 집을 내놔야 끝이 나는 거라 생각했다.


"......"

부동의 남편.
"아니 팔아야지. 집 내놓는 것부터 해야 정리하는거지. 집 구해서 각자 나가사는 건 그 다음이고.

여보가 이 집 명의자니까 여보가 매매 올려놔야지. 이거 언제까지 올릴 수 있어?"
당장은 방을 얻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한 남편에게 집을 팔자고 그 정확한 기일을 물어보자 남편의 표정이 정말 당황한 듯 얼굴이 새하얘졌다.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정리 확실히 해야지. 5월은 그래도 어버이날이니까 양가 다 챙겨드릴 거 챙겨드리고나서, 6월쯤 법적 서류 쓰는 걸로 하고.
차는 어차피 엄마가 너 사주라고 돈 보태준 거고 나는 운전 잘 하지도 못하고. 너 차로 일하는데 필요하니까 그냥 너 쓰고, 대출은 내 명의니까 그냥 내가 갚을게.
집은 어차피 팔면 대출 갚아지니까 그걸로 다 정리되면 그때 빚다갚고 남은 돈으로 각자 원룸 구하면 되지."


"......."

P에서 J로 바뀐 내 성격답게

나는 일의 순서를 대략적인 달로 바꿔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5월이 가정의 달이니 가정파탄낼 이혼 얘기는 일단 어른들께 하고 싶지 않았고, 정말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수순을 밟을 결정은 6월에 나도 좋을 것 같았다.

집도 차도 엄마의 돈이 많이 차입되었다는 걸 안 친구들은 왜 나보고 내 명의로 하다못해 공동명의로도 안했냐며 나에게 등신 호구라고 했지만 난 다 괜찮았다.


"남편 기죽여서 좋을 거 없어. 바깥에선 어떻게든 기 살려주고, 후드러팰 일 있어도 밥은 해주고. 항상 너 할 도리는 꼭 다 하고 나서 잡도리하는거야."


엄마는 언제나 사위의 기살림이 먼저였고, 나도 이의가 없어서 집 명의를 남편으로 한 뒤에 다시 공동명의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어차피 평생 같이 살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집에 일원이 된 남편이 남이 된다는 생각에 겉은 멀쩡한 척 했어도 속은 면도날 수백개가 날을 세워 내 심장으로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집 대출은 남편, 차 대출은 내 명의지만 집 대출 갚고 남은 걸로 차 대출이 안 갚아지면 그깟 빚 니가 가져가라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이혼의 대가로 내가 갚아도 그만이었다.

이 날, 이상하게 남편한테 한번만 더 확인하고 싶었던 내 질문이 우리 화해의 물꼬를 튼 게 신의 한수.


"나 두번은 안 물어볼거야. 뱉은 말 철회할 기회줄게. 진심이야, 말실수야.?"


"말실수야. 대화안통한다는 건 진심인데. 정리하자고 한건 말실수야."

남편이 그대로 정리하는 데 동의했으면 나는 다음주부터 가정법원에 낼 서류를 노트북으로 작성할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을 빨리 도려내야 나도 덜 힘들고
그도 그가 원한 아이있는 삶으로 뛰어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리고 그 끝을 생각하니 더는 숨길 게 없었다.

정말 원초적인 내 불안을 얘기했다.
"윤상아. 나는 너랑 무슨 맘으로 결혼했냐면.
니 두눈만 날 봐주면
니 팔다리가 전부 없어져도 너를 책임질 자신이 있다.
이 생각으로 니가 결혼하자고 할때 오케이한거야."

"......"

나는 이 날, 그냥 마지막이다 하고 참아왔던 얘기를 아이를 달래듯 차근차근 이어나갔다.


"그랬으니까 니가 퇴사하고 뜬금없이 개를 키우자고 데리고 와도 키웠고.

한 마리 외롭다고 한 마리 더 키우자고 할 때도 결국엔 데리고 왔고,
가게 하고싶대서 시부모님 노후자금 빌려다가 가게차리고.

내가 같이 해줬으면 좋겠대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광주까지 가서 너랑 가게 했고.
차 사고싶대서 엄마돈에 대출 끌어다 차 바꾸고.
대리점하고 싶은 거 들어갈 땐 또 내 통장 월급도 안들어오는데 마이너스내면서,

할머니 가발사준다고 모은 통장도 다 빼서 월세막고, 직원 월급주고.
혼자 술접대 하기 싫대서 너 따라서 새벽 두시 세시까지 노래방가서 탬버린 두르고 화장실가서 토하고 와서 다시 마시고.
낚시가고싶으면 장사안돼도 내가 가게 보면 되니까 그냥 보내주고.
친구들 오면 니 친구들이니까 술상 봐주고 같이 마시고 재워주고 해장 시켜 보내고.


낚시갔다 와서, 스크린치고 와서, 친구들 만나고 와서 피곤할테니까,
개 두마리 특히 우리 지랄맞은 덕구 알지? 두마리 혼자 산책시키고.

윤상아 있잖아.

나는 내 친구들이 가끔씩 와서 "너는 왜 취미가 없고 맨날 개산책만 시키냐"는데..

내 동생이 와서 내 날개가 꺾인 사람처럼 사냐고 할 때마다 그냥 넘겼어.

왜 나라고 안하고싶어 여행이고 너처럼 취미 가지고싶지. 근데 둘다 그럼 어떡하냐.

너 나 2일 입원했을때도 노트북들고 왔던 사람이야..세금계산서랑 구조변경 어떻게 하냐고.

그 입원했던 에피소드도 웃을 수 있는 게 이제 다 지난 일이니까 재밌게 말하니까 진짜 재미만 남은 줄 아나본데,
아니야. 난 그 때 진짜 너무 충격이고 서러웠어..

애 번아웃 온 것 같다고 내 친구들이 와서 그때 나 다낭오라고 오사카 좀 데리고 간다고 할때 너 뭐랬어.
가게 어떡하냐며. 그때도 울면서 나 못갔지.

그 가게 내가 하고싶다고 한거 아니잖아..

너 나랑 결혼해서 휴대폰 몇번 바꿨지?4번?
나는 그때마다 당근으로 사고 니거 물려받아쓰고
지금 이 고장난 갤럭시워치도 너 가민사주고 내가 쓰지?
나는 5천원 만원 벌벌 거려가면서 아껴도 너 새옷 사주는 건 주저없었어. 난 그랬어 너만 좋으면 됐어.
엄마가 왜 너 돈 하나도 못버는데 빚만 잔뜩 지는데도 너 돈 해주고 차도 집도 다 니 명의로 하라고 해준 줄 알아?
어디가서 애 기죽지말라고. 너 남편이니까 남자로 잘해주라고. 둘만 행복하면 아무것도 무서울 거 없다고.
근데 나는 니네집에서 무슨 대접 받았어? 비교안할래야 안할수 없었던거 알지..? 그래도 내 남편 가족이니까 너 가족이니까 참고 9년살고 10년된건데..

내가 살면서 나라고 정말 아이 자체가 그렇게 무섭고 싫은 존재일까?아니..
우리가 좀 더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풍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면 이미 난 결혼하자마자 가졌을 수도 있어. 내가 아이낳으면 안될 이유만 말한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객관적으로 네 결핍은 내가 채우면 되는데 내 결핍이 애한테 가는건 내가 힘들것같아서 . 너 하나 보면서 산 9년이 이제 조금 숨이 트여서 나 좀 쉬고싶은데 애기얘기나오니까 내가 압박이 너무 됐어.
그 와중에 니가 너무 괜찮은 사람이 돼 점점 와이프 생각해주는 배려있는 사람이 되고 있어.
그럼 나는..
나는 너를 보내줘야한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는게 당연하지않아?"

눈가가 뜨거워지는 중에 남편이 답했다.

"아니. 왜 자꾸 날 보낼 생각을 해. 나는 너랑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그니까 다른 사람하고 애가질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남편에게 나도 소리쳤다.


"그럼 이럴 때는 문제해결하듯이 수학 답말하듯이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 안아주든가 머리 쓰담쓰담해주는거라고 이 바보새끼야!"


"아 그게 잘 안되는데 어떡해.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날 선 말들 속에서 서로의 진심이 오간 대화의 끝은

그래도 몽글몽글한 저녁노을같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

그 다름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그 다름 때문에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또 똑같이 예민이들이 만나는 날이면 후회할 말을 써가며 싸울 것 같다.

그 싸움은 또 극에 치닫게 하고 서로를 상처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엔

둘이 아니면 의미가 없을 부부의 삶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로가 없는 삶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너에게서 나를,

나에게서 너를,

우리가 우리를 지우고 사는 날이 온다고 해도

나는 지금 이 남자와의 결혼생활의 모든 날들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딩크는 아이가 없는만큼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키우고 산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더 애써야 한다는 것 역시 잘 알게 되는 것.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서 가질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내 나이 마흔줄에 가까워지면서 더 배울 감정들이 남아있다는 게

너무도 신기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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