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느낄수있는 최대의 배신감과 염치에 대하여
"우리 이제 좀 안정적인 상황인 것 같은데
그래서 말인데
이제 나 아이 갖고싶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때는
생각보다 빨리
행복의 문턱에 도착하자마자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
9년내내 내가 본 남편은 늘 자기가 먼저였던 사람이라
장사에 몸쓰는게 힘드니 내가 봐줘야지 하고 참은게
화근이었나.
7년을 헌신해도 사업보다는 엔지니어였던 남편은
나아지지않고 빚만 느는 장사를 접었다.
마지막으로 큰 빚을 내 산 집에서부터
남편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느덧 분수에 안맞는 비싼 로봇청소기를 사와서
집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그에게서
자꾸 이질감이 느껴진건
몇주전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선언한 뒤 부터인 듯 하다.
편했던 집안 공기가
공기 흐름이 바뀌는 것만 같고
나 혼자만 늪에 발이 빠진 채 허우적대는 것 같고
남편은 이미 이 늪을 벗어나
혼자만 안전지대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늪을 등지고 걸아가는 저 사람과는
같이는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저녁 국수 당번으로 면을 퉁퉁 불려놓고
맛대가리없는 면발에 눈물을 흘렸다.
퇴사를 앞두고 일이 너무 많아서인가.
3개월간 스트레스를 받아서인가.
그냥 요즘은 다 버겁다고.
엄마집 가는 것도 힘들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고 말해도
그냥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을 보고
아맞다 쟤 잇팁이지.
감정기복 못받아주는 구조적 인간이라는 분석을 끝내고
설거지를 해놓고 밤산책을 하러 나와서
위청수만 2병째 마시고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와
그냥 잠을 청했다가 이제 깼다.
이혼이 말이 쉽지 10년을 살았는데 어떻게 그게 쉬워
라고 하겠지만
수없이 고비를 넘긴 나에게도 감이라는 게 있는데
아이 문제는 그 10년도 뒤집을만큼
부부 사이에서는 도저히 중재가 될 수 없는 문제라는 얘기다.
한쪽이 누그러지기에는 우리 둘다
너무 오래 되었다는 것.
그래서 어느 한쪽도 포기나 양보가 힘들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내 염세주의적 사고방식
예민함
민폐끼치는 걸 극혐하는 성격
쓸데없이 남눈치보는 것
전부 너무 싫다.
싫은데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이 성격을
어릴때부터 조금씩 불안정함 속에 커온 이 불안들을
아이에게 안물려줄 자신이 없다.
그냥 남편이 2세를 갖는다면
충분히 사랑받고 자라고 그늘없이 큰 어떤 귀하게 자란 여자와 정말 예쁜 아이를 낳고 살아도
축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10년만에 누구한테도 뺏기기싫은 남편이 되어버려
친구들에게 야 너 재혼한거같다고 우스개소리로 말한게 진짜
남편 재혼을 시켜줘야 하나 고민하는 판이라니.
아이러니 아이러니 거지같은 아이러니다.
"5년만 일찍 철들지그랬냐......"
내 속마음이 너무 삐죽하고 튀어나왔다.
이제 너무 늦게 철들어버린 큰아들이
왠지 야속하고
안쓰러운데
그걸 또 내생각 안하고 남편 안쓰러워했던 내가
짜증나고 빡친다.
나는 죽어야 남눈치가 끝날지도.?
도망가고싶다.
그냥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먼지처럼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엄마는 아빠같은 쓰레기를 30년넘게 견딜 필요도 없었을지도
큰엄빠의 고생을 좀 덜었을지도
할머니의 눈물을 줄였을지도
우리오빠와 내동생의 인생이 좀 행복했을지도.
젓가락질도 잘 못하는데 오늘따라 불어터진 소면이
꼭 나같아서
울컥 울음이 터지는데
공감능력없는 남편앞에서 터졌다는게
너무 짜증이난다.
어차피 그는 날 위로해줄 사람이 아닌 걸 알면서도
회피성향이 뇌구조상 어쩔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내가 원하는 답을 남편에게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둑처럼 터져나온 눈물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첫차를 타고
출근을 해야겠다.
집보다 사무실이
그 지옥같던 회사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역설을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인간이지,
나에게 묻기 바쁘다.
정신과를 가야할지
상담센터를 가야할지
여행을 가야할지
모든게 물음표인 인생에서
하나는 느낌표라고 느낀게 남편과의 삶이었는데
10년만에 이제사 처음 느낀 그 안정감이
산산조각 난 지금은
어두운 방 그 자체다.
역시 결혼은 무리였을까.
애없이 결혼해도 잘산다는 부부는
세상에 없는걸까.
감히 딩크를 외친 결말이 씁쓸할거라는 걸
어차피 아이가 있어도 인생은 외롭다는 걸
인생에 뭘 더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 커다란 행복 아이가 주는 행복보다
그 아이를 온전하게 키워서 남 줄 자신이 없는 내 문제를 너무 잘 알겠어서
너무 잘알아서 내린 선택이
꼭 예리하게 갈려서 내 심장부를 꿰뚫은 칼끝같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10년전과 똑같이 느껴지는 건 늘
내가 필요해서 사는것같다는 기분이라
나를 위해 산다는 느낌보다
늘 자기자신에 나를 맞춰 살게 하는 느낌인게
거북하면서도 맞췄다는게
맞춰가는 게 익숙해져서 이번에도 그냥 내가 맞춰야 하는 게
아이문제에서는 타협할 수 없다.
아.
또 새벽 네시네.
우주밖에 돌고 있을 혜성들은
언제 떨어지냐.
이제 지구도 좀 정화할 겸
지금의 나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
우주먼지가 되어서
그냥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내 장래희망은
우주먼지인걸까.
햇빛에 타들어가는 아침햇살이고도 싶고
그냥
무
무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남이 존재이니
안태어나는 게 맞겠지.
고통도 경험이고 자산이라는
거지같은 진리가 미워지는 새벽이다.
세븐시스터즈 절벽
브라이튼 양떼
아주 오래전의 그날로
시간을 돌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