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때까지는 끝난게 아니지
"쌤 그거 알죠? 여기 또 업계가 좁아~ 하하 그래서 나갈 때 잘하고 나가야 하고...(하소연)..내가 좀 많이 뇌정지가 오겠지만....(중략)....그런데 진짜 막 무슨 얘기했는지 궁금한 건 아니고...."
사직서 제출 이후 본사 면담이 끝나고, 팀장이 벌벌 떠는 본사 직원이 가고 난 후 자꾸 장황하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물어오는 팀장 덕분에 하루 50분 이상은 업무 정지가 시작된다. 그리고 항상 자기가 보니까 이렇다 그나저나 지난번 회의 가서 보니 실적1위라는 그 팀장은 평판 좋던데 막상 보니 안그럴수도 있고 사람 성격 잘 모르지않냐며 또 인정받고 잘나가는 어떤 팀장의 뒷담화를 신랄하게 하고 있다.
'하 나 업무보고 해야되는데ㅠㅠ.'
"근데 진짜 쌤 뭔 얘기했나 막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요 진짜.^^"
결론이 뭔지 항상 알 수 없는 말들의 연속.
우회적 화법을 워낙 많이 쓰는 팀장에게 직설로 너때문에 나간다는 말은 하지 않고 나도 빙빙 돌려말하기.
"네... 아 네.... 그렇죠 힘드시겠어요...^^아 알아요 그런거 아닌거요. 그쵸 알죠~아 또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는 또 어느새 말을 듣고 있다가 퇴근시간을 75분이나 넘겨서 퇴근을 했다.
"그래도 얼마 안남았다!!"
3.31까지로 사직서를 냈더니 본사 실장이 와서 많이 힘들었냐며 인사치레성으로 웃으며 사직서에 서명을 받는다.
나도 개인사유로 써놓고 빨리 나오려다가
"일은 할 만 했어요?"
이 질문에 왜 울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 네 정말 95%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이 일은 힘들고 야근 많아도 할만큼."
"응?근데 왜 그만둬?나 그냥 진짜 궁금해서."
"어차피 나가는 마당에 뭐하러 얘기하나 싶어서 안하고 나갈래요."
사람 안맞아서 나간다는 퇴사자는 일전에 나랑 친해진 동료쌤 하나로 족하길 바랬을 팀장.
이미 팀장 때문에 못다니겠다고 사유 시원하게 던지고 나간 동료쌤 퇴사후의 팀장의 행태를 다 지켜본 나로서는 이건 무슨 깡패출신 보육교사가 유치원 아이 학대하듯
하던 지난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이윤미 이 xx년!!!날 엿먹이려고!!! 아아악 열받아 x발 진짜!!!!"
퇴사하고 그녀가 떠난 빈자리에서 이것저것 들쑤시다다 발견한 전산에서 오기재를 하나하나 찾아내며(더 급한 일들은 차치하고) 쌍욕을 남발하더니 또 시작인 팀장의 욕퍼레이드.
"본사는 미쳐가지구 10일에 나간다는 인간 10일치만 월급 주면 될거를 기어이 한달을 다 채워주질 않나, 하 진짜. 이거 한달치 월급 아깝게 다 줘야 되잖아."
"와 나 진짜...."
"아 쌤 진짜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동료쌤이 떠나고 어언 한달이 되어서도
채워지지 않는 채용에 회사문제 또는 본인문제를 톺아보면 참 좋을텐데
계속 소환되는 퇴사자 뒷담화가 내 공감을 바라듯이 이어지고 나는 급기야 밥을 먹고 온다며 나가서는
빙빙 동네를 돌다가 들어온다.
4월이 되면 내 욕도 저렇게 신나게 하겠고만. 하여튼
체력도 좋아.
7시 반. 8시. 어느 날은 7시에도.
눈이 떠지는대로 최대한 팀장과 덜 엮이려고 일찍 출근했다.
3개월중에 2개월은 8시안에 출근했던 이유가 팀장의 하소연을 덜 들으면 30분이라도 일찍 퇴근할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도 일이 안 줄어드는 건 너무 열심히 인정욕구에 푹 절여진 팀장이 물어오는 일거리를 툭툭 하나씩 둘씩 나한테 흘리고 떠나고
나는 또 7시.8시에 퇴근하면서 남편의 한숨을 유발한다.
"야 진짜 그 회사 징하네. 퇴사한다는 애를 칼퇴를 안시키냐?"
"정신 못차렸네 아직."
1월 첫출근부터 내가 선택한 회사가 틀렸다는 말을 해주던 그였는데. 엄마도 말린 회사를 내가 3달이나 다니니까 대단도 하다며 혀를 끌끌 찬다.
나는 그래도 일을 내팽개치는 것 자체가 내 인생에 없다.
오죽하면 내 퇴사에 어쩌면 이 회사 이익보다 우선이어야 할 참여자의 취업준비에 지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퇴사하고도 메일로 자소서 코칭을 원하면 언제든 빠르게는 못해줘도 꼼꼼히 동네 언니누나처럼 봐줄게요 라는 말로 퇴사인사를 돌렸다.
오히려 퇴사를 정하고 나니
이 친구들을 지금 이 돈벌레들이 득시글한 곳에서보다야 필요한 상담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자기 얘기를 힘을 쥐어짜 해주던 참여자들의 인생을 내가 엿본 대가는 크다.
그래서 어린 친구는 어린 나이에 맞게, 중장년층은 또 그 나이대와 경험에 맞춰 상담을 해주던 시간들은
너무 값진 경험이었다.
"야 기껏 밥도 안주고 최저월급 주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냐??지금 새벽 1시야.!!!"
남편은 이런 나를 정말 이해못하겠다는듯 말하면서도 손으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방 테이블에 놔주고 간다.
"고마옹. 근데 얘는 진짜 내가 밤새서라도 봐주고 싶어.얘 이거 3일밖에 안남아서 내일은 피드백줘야지 자기도 최종으로 점검하고 내지~얘 미쿡 가면 내가 내 생각 한번 해주면 그게 코칭비라고 했다고!"
"어련할까 복지사양반..... 빨리 잠이나 자."
사회복지사인 제부는 늘 나한테 누난 빨리 때려치고 실습마무리해서 복지관이나 들어가라는 말을 하지만
나는 퇴사후에도 나에게 남은 숙제를 미루지 않고 해나갈 생각이다.
이미 제도 이용혜택이 남아있지 않거나 별게 없는 참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자신감을 주면서 깨알정보들을 주워서 가공해서 주는 것.
회사의 이익과 상관없이 정말 귀담아듣고 기다려주며 필요한 이야기를 해줄 것.
이걸 이제 회사를 나가면 해줄 수 있다.
왠지 다다음주의 내 미래가 더 기대되고
퇴사 후의 내가 더 빛날 것 같은 생각.
어제도 수백마리 벌레가 내 몸을 뚫고 나오는 징그러운 악몽을 꾸었지만
일주일 후 퇴사인 나는 이 꿈마저 내가 딛고 나아갈 작은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선다.
공기는 차지만
내 속은 뜨겁다. 팔팔 끓어오른다.
"오예 오늘도 1등.!!!"
그렇게 일찍 출근한 사무실에 나 혼자인 게
너무 행복한 아침임에 감사하며 여느날과 다르지 않게
환기를 시키고
난방과 내 컴퓨터와 공용기기들을 켜고
사무실 비품정리를 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한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까지 잘하고 나가자.
후회없이 치열하게 일한만큼
마지막날도 그냥 여느날 퇴근하듯이
웃으며 인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