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강박과 책임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안 가본 길, 안 가본 식당, 안 가본 곳으로의 여행.... 이런 게 다 치매에 좋대 큰엄마."
"아이구~ 니네나 재미나게 살어 이것아~."
"아니 진짜야. 치매예방에도 이게 짱이라니깐!! 단백질이랑 뇌랑 관련이 있다고 하니까 닭고기랑 계란 두알씩 꼭 먹고."
큰엄마는 요즘 두드러기로 고생중이신데, 명절에 양가에 넉넉하게 보내드린 토마토주스(뭐 한 팩당 토마토 2개를 갈아넣었다나)를 제일 잘 드시고 계신 분이다.
"그거 니가 오빠 주라고 놓고 간것도 큰엄마가 다 먹었엉~."
"응 많이많이 먹어. 그거 다 드시면 또 사줄게!"
"아잇. 지랄말고! 그건 큰엄마가 돈 다 부쳐줄거니까 영양제랑 호박씨 조금 더 보내줘. 얼만지 문자로 보내놓고~."
"아 포인트라고~"
"포인트는 돈 쓴거 아니여? 지랄하구 있어!! 큰엄마가 늙어서 진짜 돈 하나도 못 벌면 돈달라 할거니께 지금은 그냥 돈 주면 받아서 보내!"
늘 그렇게 나의 엄마보다 먼저 나를 챙기던 사람.
당신의 딸보다 나를 더 먼저 챙겨주는 사람.
분명히 핏줄이 저쪽인데 그 엄청난 책임감과 정으로 일곱살의 나를 나의 오빠까지 합해 네명의 사춘기 소년소녀들을 스무살까지 키워내시며, 1의 차별도 없이 키워준 사람.
나에게 큰엄마는 다른 친척집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흔한 자산관계의 파멸로 인해 얼룩지거나 명절에만 얼굴을 들이미는 데면데면한 친척이 아니다.
그냥 나의 또다른 엄마 그 자체.
나의 엄마와 함께 또다른 나의 아픈 손가락.
낳아준 엄마가 나를 7살에 머무르게 했다면
키워준 엄마로 7살의 내 불안정한 자아를 20살의 나로 완성시켜준 장본인.
중3 때 소주 2병을 때려마시고 방황하던 나에게
"큰엄마 밑에서 커서 이 모양이야? 그런 소리 안 듣게 하려고 할만큼 했어. 너 이제 그냥 막 살거야?
마시고 싶으면 차라리 집와서 먹어. 친구들 다 데려와서 집에서 마시라고. 아주 한짝으로 사다줄테니깐. 더 해봐. 더 마셔봐!!!!"
새 소주병을 사다놓고 내 앞에서 눈물 고인 목소리로 처음 내게 소리치던 날,
나는 큰엄마한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했고,
그 이후 나의 사춘기는 없었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콜라보로 인해
큰엄마와 큰아빠가 포기해야 했던 그들의 인생과
그 속에서 표현은 안했지만 많은 것을 양보해야했던 두 사촌의 인생
내가 평생 갚아도 갚아지지 않을 가늠되지 않는 30여년의 인생이
내 인생의 무게보다 훨씬 무겁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미 외가의 이모와 삼촌들에게도 빚이 많은 엄마 역시 그 마음의 빚을 안고 살면서
쿨한 성격같아 보여도 마음 씀씀이가 여기저기 보이기 때문에
내가 그래 이래서 엄마 딸인가보다, 하고 늘 빚의 그늘에 허덕였던 것 같다.
내 세번째 학기 대학 등록금을 흔쾌히 내주고 내 결혼식에 "엄마한테도 말하지말고 정말 너 힘들 때 이 돈 꺼내 써"라며 이백만원을 쥐어주던 둘째이모. 그녀의 아들이 전역 후 취업이 안되어 안쓰러운 엄마가 이모가 엄마 많이 챙겨줬으니 이제 동생 용돈 좀 보내라는 엄마의 전화 한통에
올 명절에는 얼마 남지 않은 통장에서 50만원을 용돈으로 보냈다.
"언니 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잘해줘?"
"아 왜 거기까지 신경을 써~"
"그 정도면 적당히 했어 고만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니 생일을 뭐하러 챙겨~"
너도 참 너라는 말
너무 열심히 산다 라는 말이 "너 그러다 죽어"라는 말로 바뀔 만큼
나는 그냥 내 부모가 진 빚, 그로 인해 내가 진 빚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을 평생 가지고 살 것만 같다.
그 빚으로 인해 망쳐버린 여러 사람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큰 것 같다.
착한척이고
위선이라고 해도 할말은 없다.
가끔 이런 것들이 나의 텅빈 눈 속에서 아무 연결고리없이 사라져버렸으면 할 때도 있으니까.
똑부러지게 잘 커서 아이낳아도 잘 살 것 같다고 말해주는 칭찬이 제일 듣기 싫다.
난 잘 크지도
잘 살 것 같은 성격도 아닌데 그렇게 보인다는 게
이제 와서 너무 바르게 살려고 애쓴 내가
싫어진달까.
눈치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불편하든말든
내 할말 내 갈길을 걸어가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마음의 빚이라는 것 자체가 뭔지 모르는
그런 사람으로 하루만 살아본다면
그건 무슨 기분일까.
가끔씩 퇴사한 동료쌤을 만나거나 내 남편을 볼 때면
"그냥 그런 생각 자체를 안하는데."
"그런 얘길 했어요? 아 난 못 들었는데."
"보통 거기까진 생각 안하지 않나?"
하며 진짜 남한테 신경 안 쓴 자신에게마저 당당한 모습의 사람들을
너무나도 닮고 싶다.
언제부터 나의 이 책임감과 강박이 시작됐는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그냥 나는 이래야만 마음이 편하고
내 것이 없어도 내가 신세를 진 사람에게 주어야 할 몫, 온전히 돌아가야 했을 몫에 대해서는
그 몫을 다할 때까지 생각하곤 한다.
동생이 나에게 가보라는 병원은 아직 안 갔지만
사실 가지 않아도 알것같은 내 마음 속 무거운 돌
이 돌은 그냥
잠시뿐인 감기라기 보다는
그냥 큰엄마가 겪는 열감있는 두드러기,
두드러기 같은 거라고 해둬야겠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생긴 두드러기.
나에게 강박은, 책임감은 내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두드러기 같은 걸로.
이렇게 정의내리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지는 이 마음 역시
멍청한 나의 속죄이고, 빚의 탕감의 일부일까.
편의점에 가 큰엄마의 영양제, 엄마의 감기약을 차례로 택배부친 뒤에 돌아와
사촌오빠의 영양제를 주문하며 든 생각은
남편이 먹고 싶다는 삼겹살을 사러 가기 전에 끝낼 산책을 앞두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든 생각은
그래도 이런 걸 내가 챙겨줄 수 있어서
아직은 신경써줄 수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라고.
돈이 없지
염치가 없냐
돈이 없지
눈치가 없냐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 싫어 어릴 적부터 내가 내린 선택이니
쓸모있는 사람으로 죽고 싶은 본심을
잘 지켜나가자.
자꾸 약해빠진 소리는
이 브런치에만 남겨두고
그냥 계속 빚갚으면서 잘 살아 나가는 것
내 마음 속 돌이 내 심장을 짓누르지 않게만
그렇게 발쪽으로 살짝 내리두는 것
그게 내가 살면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까만 두눈을 바라보며 나가기만 기다리는 우리집 개를 위해
그 개를 산책시켜야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나를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 들이키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본다.
남 신경쓰느라 눈치보느라 내 것을 못챙기는 등신, 헛똑똑이 소리를 듣는 게 꼭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며,
남을 위해 사는 삶 자체가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또 하루를 채울 일거리들을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다.
결국은 나의 이 빌어먹을 이타주의도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나만의 이기주의로 이어지니까
이 그늘은
나무를 위한 것 같지만
자세히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